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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Sep 20. 2020

오리온자리의 몸통

밤하늘을 수놓았던 별자리를 추억하며

7시를 넘어서자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다. 낮보다 밤이 길어지는 계절, 가을이 온 것이다. 유달리 밤하늘이 맑아 보인 건 왤까. 한동안 출근길에 쨍하게 파란 하늘을 볼 때면 그 찰나를 아로새기려 걸음을 늦추고 눈에 꾹꾹 담았다. 돌아가는 길엔 피곤한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기며 스마트폰 속 아우성치는 알림들을 하나씩 눌러보느라 밤하늘을 스쳐 지나가고 말았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오늘, 친구 K와 언덕진 공원에 올랐다. 다가올 겨울을 맞이하려는 나무가 몸을 비틀어 떨어뜨린 낙엽 잎 사이로 솔방울과 도토리가 보였다. K는 낙엽 사이로 도토리를 찾아 줍는 게 낙이라며 도토리가 보일 때마다 여기 보라며 손으로 가리켰다. 간밤에 이슬이 스며든 듯 부드러운 진흙과 바스러진 낙엽이 한데 엉겨있는 듯했으나, 찬찬히 살펴보니 '옳거니' 엄지손톱만 한 도토리가 그 사이로 빼꼼히 나와 있었다.


도토리 찾는 게 대수라며 지켜보기만 하려다 나도 모르는 새 숨어있는 도토리를 찾는데 여념이 없었다. 손 한 줌에 들어올 만큼 도토리를 모으고 나자 남들이 손 닿기 힘든 풀더미 속에 놓고 오자고 K는 말했다. 그러면서 K는 종종 도토리를 주워가시는 분들이 있다며 다람쥐 식량을 남기려 손이 잘 안 가는 곳에 숨겨놓는다고 얘기했다. 조금 수고로울지라도 다람쥐를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도토리를 나둘 장소를 같이 찾아주었다.


오랜만에 자연과 함께해서일까. 돌아가는 길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반짝이는 두 별이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자 별 주변에 희미한 다른 별들이 보였다. 별들을 선으로 이어보자 익숙한 형체가 나타났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학창 시절 과학시간에 만든 별자리판을 들고, 밤하늘에 별자리를 찾아본 기억이 떠올랐다.


먼저 찾았던 별자리는 오리온자리. 가장 밝게 빛나는 두 별이 대각선으로 있고 그 중간에 세 별이 나란히 놓여있어 찾기 쉬웠다. 오리온의 몸통만 찾는 게 다였지만 별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데 만족했다. 그 뒤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개를 들어  오리온자리가 조금씩 옆으로 움직이는 것를 지켜봤다. 시간이 지나 언제고 한결같은 밤하늘 대신 푸르스름한 화면에 눈을 돌렸다. 오랜만에 본 오리온의 몸통은 가로등의 빛에 밀려 희미하게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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