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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한 잔 드세요

아홉째 밤

by 꽃비내린

우울이란 단어를 들으면 떠올리는 이미지와 달리, 우울함은 슬픔을 잘 느끼는 것보단 기쁨을 덜 느끼는 것에 가깝다고 한다. 20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감정의 진폭이 워낙 커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가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빠져드는 일이 널뛰기식으로 반복되곤 했다. 모든 게 처음이어서 어리숙하고 새롭게 느껴졌던 일들은 30대에 들어 그 빈도가 줄어들었다. 새로움보다 익숙함이 더 잘 느껴지는 나이이다. 감정이 잔잔해져서 좋은 점도 있지만 무미건조하게 반응하고 시시해지는 마음이 아쉽다.


나는 친구인 K와 이런 감정에 대해 말하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을 느낄 수 있을지에 대해 자주 나누곤 했다. K의 경우 가끔씩 답답해지면 냄비에 커피를 넣고 끓인다고 했다. "커피를 끓이기만 한다고?" 그는 방 안에 은은한 커피 향을 내는 것에서 기분을 낸다고 했다. K에게는 그만의 행복 철학이 있는 듯했다. 맛있는 디저트가 있다면 일부러 사지 않고 아껴놨다가 정말 마음이 힘들 때 디저트를 사서 먹는 것처럼.


K의 얘기를 듣고서 나는 언제 작은 행복을 느끼는지를 생각했다. 나는 일이 익숙해질 때 생각이 많아지는 편이다. 보통은 부정적인 면이 많다. 부정적인 생각에 골똘하면 감정은 우울로 미끄러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일부러 새로운 장소를 찾거나 새 취미를 만드는 방식으로 활력을 찾는다. 한 때는 주말마다 카페를 도장깨기 하듯이 갔었다. 일과 집이란 익숙한 곳을 벗어나 낯선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는 경험은 설렘을 줬다.


PM은 늘 불확실성 아래서 성과를 내야 해서 그 모호함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많다. 그럴 때면 머리가 아닌 손으로 만드는 일에 집중한다. 나노블록이나 프랑스 자수 키트를 사서 3시간 이상 몰입하는 식이다. 올해는 행복을 느낄 만한 일들을 적극 시도하고 있다. 꾸까에서 꽃다발을 만들기, 기타를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연주하기, 전국의 국가 유산을 방문해서 방문자 여권에 도장 찍기까지. 앞으로 있을 일들을 떠올리면 우울을 어느새 떨쳐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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