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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하여

열번째 밤

by 꽃비내린

내 이야기 속에는 한 가지 빠진 단어가 있다.
'사랑'
사랑은 어쩐지 낯간지러워서 친구들이 연애 얘기를 할 때도 결혼 얘기를 할 때도 유난히 침묵하곤 했다. 사랑의 단계를 호감, 열정, 안정 세 단계로 구분한다면 호감 그 언저리에만 머무르곤 했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의 춘희처럼 카메라 뒤에 숨어 좋아하는 상대를 멀찍이 바라보며 먼저 알아봐 주길 기다렸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자신에 취해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호감이 상상에서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 이별을 먼저 생각하며 환상에서 깨어난다. 잠깐의 달콤함은 베드엔딩의 쓰디쓴 맛에 자취를 감추고 만다.


20대 초반은 사랑에 쉽게 빠지는 나이다. 호감이 갔다가도 깨는 일이 잦다 보니 스스로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라 생각한 적이 있다. 삶에서 사랑만 톡 떼어놓고 옴니버스식으로 드라마를 만든다면 다양한 주연 배우를 데려와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 때 좋아했던 이들을 떠올려보면 얼굴, 성격 어느 것 하나 닮아 있지 않았다.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생활 반경에서 자주 마주쳤다 점이랄까. 소개팅처럼 연애 목적이 분명한 자리는 부담스러워 친구의 소개도 거절하곤 했다. 자연스럽게 알아가며 천천히 친해지는 것이 좋다.


아직 연애 경험이 없다는 말을 하면 주위 사람들이 놀라곤 했다. 우리 사회는 이십 대에 한 번은 연애를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서른 전엔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조급해했었다. 불신하던 데이팅 앱도 깔아보고 실제로 만나 식사를 같이 하기도 했다. 어색한 분위기에 미소를 간신히 지으며 질문을 짜내길 수차례. 역시 난 인위적인 만남은 안 맞는구나 하며 미련 없이 삭제했다.
막상 서른을 넘어서니 주변이의 걱정과 달리 세상이 무너지거나 불행하지 않았다. 조급함이 사라지고 난 후 내 인생에 사랑이란 단어는 사라진 듯하다. 그럼에도 언젠가 누군가를 다시 좋아하게 된다면 그때는 한 발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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