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번째 밤
성공의 기준을 커리어의 정점으로 생각했었다. PM의 끝판왕은 CPO니까 CPO 자리까지 올라가는 게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의 10년 차 이상의 커리어를 가진 이들의 성취를 따라가다 보면 이제 막 1년 차가 된 내겐 큰 괴리를 느꼈다. 그 차이가 너무 커서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주니어 시절에는 여러 PM 강의와 모임을 다니고 관련된 책들을 섭렵했다. 아마 그 당시 나왔던 PM 강의는 다 수강했을 것이다. 월급이 크지 않던 시기였는데 50만 원 이상의 비싼 강의도 턱턱 내며 들었으니 그만큼 불안하고 간절했었나 보다.
평생 직장인 외에 다른 길은 상상해 본 적 없었다. 3년 차가 되고 각자 기업에 속했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퇴사를 선언했다. 어떤 이는 개인 쇼핑몰을 시작하고, 어떤 이는 화과자 공방을 운영하고, 또 다른 이는 세무사를 준비를 하고 있다. 회사 밖의 삶은 지옥이라던데 다들 나름의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화과자 공방을 운영하는 K는 안정적인 공기업을 퇴사하고 다른 화과자 공방에서 1년 이상 배우면서 다녔다. 나는 그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지켜봤기에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오기까지 대단하다고 느꼈다.
회사 밖에 홀로서기한 친구들을 보면서 평생 직장인에 대한 꿈이 깨졌다. 오히려 회사라는 이름이 없어도 당당히 나를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회사를 돈을 받고 훗날 내 사업에 필요한 경험치를 쌓는 기회로 삼으라고. 평생직장이라 생각했을 땐 적당히 일하며 안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은 회사 밖에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이 회사에서 내가 배운다는 관점으로 보니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그리고 전과 다른 활기를 느낀다.
누구나 들으면 아는 브랜드가 아니어도 좋다. 아는 사람만 아는 찐팬들로 이뤄진 브랜드면 좋겠다. 어떤 상황에 던져놔도 '자, 이제 무엇부터 해야 할까."라고 말하며 곧바로 일에 착수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그 길이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