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번째 밤
어릴 때는 한 반에서 오랜 시간 함께 하게 자연스레 친해지기 쉽다. 친해지기 쉬운 만큼 거리가 멀어지면 찬란했던 우정도 바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연락하는 친구들은 고등학교 친구 1명, 대학 친구 3명 정도로 작고 소중한 인연이다. 어쩌다 이 친구들과 10년 이상 관계를 이어왔을까 생각한다.
늘 먼저 연락해야 받던 사람들은 결국 관계가 끊겼다. 이전엔 연이 한 번 닿았던 분들께 자주 연락을 못하는 대신 새해 인사를 보냈었다. 새해 첫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답장들이 많은 이들로부터 축하를 받는 기분이 들게 했다. 어느 해엔 늘 먼저 연락만 했던 이들에게 새해 인사를 보내지 않아 봤다. 그날 받은 메시지는 비어 있었다. 조금 허망했다. 그날 후로 새해 인사를 보내는 것을 그만두었다. 노력해도 이어지기 어려운 관계는 흘러 보내는 게 나았다.
오래 연락해 오다 끊긴 사람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과거에 함께 했다는 것 외에 공통점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이젠 더는 못 만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과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에 할 말이 떨어져 침묵하는 순간이 참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같이 하면 할수록 괴로운 관계가 있다. H는 고등학교 때 같은 반에서 친해진 친구였다. 그는 남에게 의존적인 사람이었다. 아주 사소한 것에도 주변이에게 골라주길 바라서 가끔은 지칠 때가 있었다. 그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한 번은 어렵게 꺼낸 고민을 진지하게 듣지 않고, 곧바로 자기 얘기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고 맥이 빠졌다. 그렇게 참고 참았던 것들이 쌓여 되돌릴 수 없는 한계에 달했다. '왜 단톡방을 나갔냐'는 그의 물음에도 조용히 차단을 눌렀다.
오래 만나는 이들은 좋은 일은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은 같이 위로하는 사람들이다. 예전처럼 자주 만날 순 없지만 오랜만에 보더라도 어제 만난 것처럼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 이들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에서 배움을 주는 사람, 친구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 이들이 나의 소중한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