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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계에 처음 상경한 그날

스무번째 밤

by 꽃비내린

2016년 12월 23일
나는 이 날 서울로 상경했다. 줄곧 경상남도에서만 자라왔었고 서울은 유명한 연예인들이 사는 별세계로만 여겼다. 그날이 오기까진 말이다.

원래 나는 심리학과 교수가 꿈이었다. 고등학생 때 읽었던 심리학 책이 좋아서 입학했으니 다른 길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막상 졸업논문을 쓰면서 연구하고픈 주제가 없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시간을 유예하기 위해 석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정말 연구할 주제가 생기면 석사과정을 밟고 싶었다. 남은 선택지는 취업이었다. 막상 막학기가 닥치자 불안했다. 취업은 애초에 고려대상이 아니었어서 심리학과를 졸업하면 뭘 해 먹고살 수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학교 취업상담센터에서 심리학과 졸업생의 취업 통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건 전문 리서처였다.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여러 리서치 방법론을 통해 인사이트를 도출한다는 점에 관심이 생겼다. 당시 정부에서 청년취업아카데미로 직무교육을 무료로 지원했었다. 나는 리서처 양성과정에 지원했고 서울에 당일치기로 올라와 면접을 봤다. 결과는 언제 발표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평소처럼 마지막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시험을 치렀다.

시험이 막 끝나고 도서관에서 소지품을 챙겼단 그날 나는 합격 문자를 받았다. OT는 바로 그 주 금요일이었다. 급한 대로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하고 캐리어 하나에 들어갈 정도의 옷가지와 필수품을 챙겼다. 그날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지하철을 잘 못 탈 뻔해 제때 도착하지 못할까 식은땀을 흘렸다. 가는 길에 낑낑대며 캐리어를 끌고 가니 같은 기수 남자분들이 서로 도와주려 해서 서울 남자는 다르긴 다르구나 생각했었다.

이틀 뒤가 바로 크리스마스여서 이날은 서울에 올라온 이후로 가장 외로웠던 날이기도 했다. 한편으론 새로운 이들과의 만남으로 설렜던 날이기도 하다. 나는 이 날을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독립한 날로 기념하고자 한다. 코가 시릴 정도로 추웠던 새벽, 설렘과 긴장으로 처음 별세계에 발을 들였던 그날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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