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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의 주문

열아홉번째 밤

by 꽃비내린

옛날 동화에는 주인공이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이를 만나 욕심을 부리다 고생하고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가 있었다. 어릴 적엔 이런 동화를 읽으면 소원을 꼭 하나만 하는지 궁금해했다. '내 소원은 만 가지 소원을 비는 것!'이라 하면 무한으로 소원을 빌 수 있지 않나 하는 상상에 빠지곤 했다. 물론 신이든 요술램프의 지니든 이런 엉뚱한 소원을 들어주진 않겠지만.

한 가지 소원만 빌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어떤 일이든 잘 해낼 거라 믿게 해 주세요." 요즘 내 고민은 커리어 방향성이다. 지금 이 길을 계속 가는 게 맞을지, 아니면 다른 길을 가는 게 좋을지 결정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일을 하면 할수록 잘하는 영역과 못하는 영역이 명확해지면서 잘하는 영역을 더 발휘할 직업을 고려할지 못하는 영역을 더 개발할지 고민이 크다.

내가 잘하는 영역은 잘 듣는 것이다. 팀원들과 원온원을 하면서 업무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같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줄 때 보람을 느낀다. 유저와 인터뷰를 하면서 유저 스스로 몰랐던 감정과 본심을 끌어내는 걸 흥미롭게 여긴다. 반면 재무적인 의사결정을 어려워한다. SaaS를 도입할 때 더 저렴하게 협상하는 법이라던가, 수익과 비용을 예상해서 가격정책을 세운다던가 하는 점들은 여전히 쉽지 않다.

나는 PM 업무의 일부분은 회사 밖에서 살아갈 때 필요한 역량이라고 믿고 있다. 쉽지 않다는 이유로 그만두기엔 다른 일에서도 같은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지금 나는 넘어야 할 산을 눈앞에 두고 외면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좀 더 있어보라고 한다.

어떤 분야에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있다. 힘든 순간이 와도 포기라는 선택지는 없다. 묵묵히 노력하면 결국 해낸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이들처럼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갖고 싶어 나는 카드캡터 체리의 무적의 주문을 외워본다. "다 잘될 거야. 틀림없이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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