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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열여덟번째 밤

by 꽃비내린

'집'은 나에게 있어 포기할 수 없는 가치 중 하나다. 누울 수 있다면 어디든 괜찮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보기 전까진 말이다.

첫 자취방은 고시원이었다. 마지막 학기 시험이 끝난 직후 정부지원 프로그램에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당장 다음 주가 출석일이라 급하게 서울로 올랐다. 그땐 잠깐 머무는 정도라 생각해서 보증금이 낮고 월세가 저렴한 고시원을 택했다. 침대와 책상 그리고 리빙박스 서너 개면 꽉 차는 좁은 방에서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됐다. 프로그램에 연계해 회사에서 인턴을 시작했고 인턴과 알바를 번갈아 하면서 본래 머물려던 3개월이 6개월, 1년을 넘어 2년을 지나고 있었다.

어느 날 고시원에서 방에 창문을 뚫어주는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월세가 오를까 염려해 거절했지만 맞은편 방은 자리를 비웠는지 의사를 묻지 않고 창문을 뚫었다. 맞은편 방의 세입자 A는 퇴근 후에 허락 없이 문을 열어 어질러진 방을 발견했고 분노했다. 그 당시 나는 A와 오가며 인사를 하던 사이였고 그의 상황이 억울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A가 주변 세입자에게 종이를 돌리며 증언한다는 사인을 받을 때도 크게 생각하지 않고 했다.

문제는 A가 퇴실 후 고시원을 상대로 고소를 하면서 발생했다. 재판 과정에서 A는 증언해줄 사람으로 나를 지목했고 원장이 이를 나에게 전하면서 알게 됐다. 계속 고시원에 머무는 입장이었기에 두 사람의 진흙탕 싸움에서 난감한 위치에 있었다. 법정에 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원장이 괘씸하게 여겨 쫓겨날 수도 있다는 억울함에 한동안 스트레스로 잠을 못 이뤘다. 집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니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행히 그날 후로 원장이 더 뭐라 하진 않아 스트레스는 줄었다. 하지만 그 일은 상흔으로 남아 고시원을 나올 즈음 아쉬움이 없었다. 그 후 원룸에서 온전히 나 혼자 살게 되었을 때 고시원과 차원이 다른 편안함을 느꼈다. 요즘은 내 집 마련이 나의 꿈이다.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이뤄진 집에서 편하게 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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