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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혹시 최악의 동료라면

열여섯번째 밤

by 꽃비내린

나만 열심히 하는 것 같다.
비판만 하고 대안은 말하지 않는다.
다른 이의 결과물은 만족하지 못하고 직접 손봐야 안심한다.

주변에 이런 동료와 일을 같이한다면 어떨까. 아마 생각만 해도 피곤하고 싫을 것이다. 이런 최악의 동료가 한 때 내 모습이었단 게 믿어지시는지. 대학교 시절에 1박 2일간 사업 제안서를 작성하고 발표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세 명이 한 조를 이뤄 나는 PPT 자료를, A는 제안서를, B는 발표를 맡기로 했다. 처음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A가 제안한 상세 계획이 만족스럽지 않아 의견 충돌이 있었다. 2시간 동안 결론이 나지 않자 A는 갑자기 더는 못하겠다며 나보고 의견을 내라고 말했다.

PPT를 만드느라 바쁜데 계획까지 짜라고? 갑자기 감당하기 무거운 책임이 느껴졌다. 당황한 마음에 발표자료를 맡고 있어 못한다고 얼버무렸던 것 같다. 그때 가만히 상황을 듣고만 있던 B가 나를 매섭게 보며 말했다. "너는 어쩜 그렇게 이기적이니?" 그랬다. 이기적인 나는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다른 이들도 그만한 세상을 가진단 걸 이해하지 못했다. 발표를 하지 말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마무리는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 발표까지 마무리했다.

부끄럽게도 나는 사건이 일단락되고 나서도 한동안 억울한 감정이 있었다. '나는 열심히 하는데 다른 이는 몰라주지'라는 딱 그런 마음. 역설적이게도 내 성향과 똑같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나는 180도 변했다. 어떤 이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 불안해서 혼자 떠맡느라 매일 야근하기 일쑤였고, 어떤 이는 팀원들이 수동적이라며 알바생 앞에서 팀원을 꾸짖기 바빴다. 그들의 부정적인 일면은 거울을 이뤄 완벽함이란 치장 속 벌거벗은 민낯을 비췄다.

지금은 팀원들에게 한 때 내가 최악의 동료였다는 사실을 얘기하면 굉장히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놓을 수 없다 생각한 것들을 하나씩 주변이들에 나누며, 나에게 그리고 남에게 너그러워졌다. 이만하면 그때보다 한층 성장한 거라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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