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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열일곱번째 밤

by 꽃비내린

요즘 웹툰들은 억울한 죽음을 겪고 과거로 돌아가 복수하거나 다른 선택을 하는 줄거리가 많다. 미래의 일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주인공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다. 초반엔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연들에 대한 복수로 사이다 전개의 연속이라 흥미롭지만 어느 시점에선 질리고 만다. 모든 걸 알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은 평면적이고 갈등은 쉽게 해결되어 맥이 빠진다.

누군가 과거 어느 한 시점에 돌아갈 기회를 주더라도 그 어떤 것도 바꾸고 싶지 않다. 후회하는 일들은 많다. 부끄러워 숨기고 싶은 얘기들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경험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시간은 달리는 소녀의 마코토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해보자. 시험점수가 마음에 들지 않아 시험지 답안을 외우고 시험날로 돌아간다. 만 점 성적표를 쉽게 받을 수 있겠지만 틀린 답을 확인하고 복습하는 과정을 생략해 버린다. 그런 날이 쌓여서 현재로 돌아온다면 나는 정답만 외울 줄 아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과거를 바꾸는 대신 지난날의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들을 온전히 느껴보고 싶다. 내 인생영화라 꼽을 수 있는 어바웃타임에선 후반부 장면을 특히 좋아한다. 주인공인 팀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하루를 보내고 나면 시간을 돌려 다시 동일한 하루를 보낸다. 동료의 긴장을 풀어주려 농담을 주고받고 가게 점원에게 친절한 미소를 날리는 장면들은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매일매일이 반복된 일상을 겪으면 기쁜 일에도 둔감해진다. 그런 소소한 행복을 충분히 담지 못한 채 지나간 날이 아쉽다. 다시 그날로 돌아갔을 땐 좀 더 편하게 행복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언제나 다시 오지 않을 유일한 시간이라는 걸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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