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번째 밤
학창 시절 선생님들은 시험점수를 잘 받는 학생들을 좋아했다. 나는 반에서 모범생이었고 담임의 기대를 맞추고 싶었다. 이를 위해 스스로 완벽주의자가 되었다. 당시 내게 시험 점수는 만점만이 의미가 있었고 어느 하나라도 틀리면 모든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시험지에 그려진 동그라미 개수보다 빗금의 수에 기분이 좌지우지했던 나이였다.
인생에 가장 큰 실패는 뭐냐고 한다면 '실패를 회피한 일'에 대해 말하고 싶다. 완벽주의자에겐 실패는 없다. 아니 실패할 기회조차 내던져 버린다. 확실한 성공이 보장될 때만 뛰어든다. 학교란 테두리 안에선 모든 게 명확했다. 정답이 있고 외우면 된다. 밖은 달랐다. 정답은 없고 모호한 일들 투성이다. 나는 PM 업무를 잘하고 있는지 불안할 때마다 각종 강의와 모임을 찾아보며 완벽한 템플릿을 만들려 했다. 프로덕트 매니저와 프로덕트 오너의 차이를 구분하며 잘못 정의된 현상을 비판했고 실리콘밸리의 일하는 방식이 최고고 한국의 일하는 방식은 뒤쳐졌다고 여겼다.
잘 정리된 템플릿은 업무에 끼워 맞추며 안심했으나 잠시뿐, 불안함은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3년 차가 되었을 때 정답 찾기 게임을 멈췄다. 아무리 좋은 문화와 방법론이라도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만능은 아니었던 거다. 사회초년생 때는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많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때로는 경험하면서 실패를 해보고 경험치를 쌓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어떻게 하면 올바른 실패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차근히 실패를 경험해보고 있다. 제품을 출시했을 때 예상과 다른 고객 반응에 실망하기보다 새롭게 배운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실패는 사전에서 목표에 도달하지 않은 상태라고 부른다. '실패'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들린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목표를 향하는 수만 갈래의 미로에서 하나씩 길을 탐색하면서 출구를 찾아 나가는 과정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