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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철학

열네번째 밤

by 꽃비내린

초등학교 2학년,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아버지는 네 남매를 키우셨다. 그 시절엔 당연했지만 한 번 산 옷과 신발은 구멍이 나지 않는 한 계속 돌려 입었고 한 달에 한 번 받는 용돈은 매우 적었다. 학원 근처 슈퍼마켓에서 종종 들어가 불량식품을 100원, 200원 중 어떤 걸 사야 만족할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생 때부터 자취를 했고 한달의 용돈은 15만 원이었다. 점심, 저녁은 학교에서 주니 쓸 일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돈을 아껴놨다 교보문고에 방문해 표지만 보고 마음에 드는 책들을 사는 게 나의 작은 사치였다. 당시 내 소비철학은 한정된 예산에서 최대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었다.

나는 돈에 크게 관심이 없지만,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는 만큼은 필요하다. 대학생 시절 친구 J는 어느 날부턴가 학식 대신 편의점에서 빵을 샀다. 그땐 그런가 보다 넘겼지만 훗날 J의 입에서 듣기론 그 시기에 형편이 어려워서 저렴한 빵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한다. 나는 용돈이 적다는 생각만 했지 누군가는 용돈 받을 형편이 아니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사정을 알지 못했다. 주변 친구들이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걸 눈으로 보면서 돈은 생계를 위해 최소한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처음 돈을 벌면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쓸데없는 걸 산다고 뭐라 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좋았다. 한 때는 저렴한 것이 최고라고 여겼다 조금 비싸더라도 편한 것을 선호하게 된 계기가 있다. 어느 비 오는 저녁, 딱딱한 구두 신고 가다 뒤꿈치에 피가 났었다. 왜 그리 아픔을 참으면서까지 구두를 고집해서 신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집에 오자마자 구두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요즘은 돈은 잘 버는 만큼 잘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렴한 옷을 여러 벌 구입해 한 철만 입고 버리는 것보다 조금 비싸도 좋은 소재의 옷을 구입해 오래 입는다. 삐끄덕 거리고 먼지로 쉽게 더러워지는 저렴한 가구보다 튼튼하고 관리하기 쉬운 가구를 산다. 내 기준이 높아질수록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을 체감하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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