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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Mar 28. 2020

취업이란 필터를 걷어내면 꽤 괜찮은 삶이었다

13일 차 자기발견

물론 시간과 공간을 축소하면 '사실'보다는 '상상'에 기대야 합니다. '상상'의 세계가 진실로 다가갈 수 있는 곳이라면 기꺼이 상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어쩌면 글쓰기의 묘미는 사실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상상의 영역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손바닥 자서전 특강> 152p


겪었던 일을 글로 남길 때면 종종 사건의 순서를 바꾸거나, 대화의 내용을 조금 더 강조하는 식으로 표현한다. 기억을 재구성하면서 깨달음을 독자에게 좀 더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방식이 사실을 왜곡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같은 일을 경험한 사람들 간에도 서로 다르게 기억한다면 기억조차도 명백한 진실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글에 상상을 가미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을 하면 바로 취업하는 게 정석 아니야?" 대학교 4학년 남들은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와중에 나는 막연히 어떻게 하면 취업이 될 거라 믿었다. 대학교에서도 과 선배들보다 동기들만 만나던 터라 취업을 하기 위해선 뭘 해야 하는지, 주변에선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요새 취업이 어렵다더라'라는 말은 내게 먼 일 같았다. 졸업 전에 막막한 마음에 마케팅 리서처 양성과정을 신청하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뭘 하고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나는 피터팬 증후군인 것 같아.' 사회에 나오고부터 자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되기 싫어 네버랜드에 머무는 피터팬처럼 한동안 '어른'으로서 주어진 책임감을 짊어지기 힘들었다. 회사에서 사람 일로 힘들 때마다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대학시절에 도전을 해보지 못한 것이다. 동아리 부원으로 대회 홍보를 열심히 해서 사람들을 모집하는 일이라던가, 공모전에 나가 수상을 한다던가 아니 하다못해 친구들과 작은 프로젝트라도 해보는 경험을 했었더라면.


취업을 못한 이유를 찾노라면 생각나는 것이 너무 많았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졌을 때는 '대학 때 열심히 하지 않아서 네가 자초한 거야'라며 자신에게 상처 주는 말을 많이 뱉었다. 주변 지인들이 취업을 하고 1년, 2년 경력을 쌓아갈 때마다 나는 '바깥은 여름'의 이수처럼 어떤 곳에도 속하지 않는 애매한 성인인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사회가 나눈 이분법에 속앓이를 하며 나를 지워나갔다. 지금은 안다. 그렇게 과거를 후회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다는 사실을. '취업'이라는 필터를 걷어내면 내 삶은 사실 나쁘진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당시 이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도화 혼자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멀찍이 지켜보는 일이었다. 도화의 말투와 표정, 화제가 변하는 걸, 도화의 세계가 점점 커져가는 걸, 그 확장의 힘이 자신을 밀어내는 걸 감내하는 거였다. 게다가 도화는 국가가 인증하고 보증하는 시민이었다. 반면 자기는 뭐랄까,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애매한 성인이었다. 이 사회의 구성원이되 아직 시민은 아닌 것 같은 사람이었다.
<바깥은 여름> 중


지금도 나는 이런 미련이 불쑥 올라오곤 한다. 하고 있는 일이 진척이 없고,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더더욱 이렇게 하는 게 맞는가 회의감이 든다. 아무 기업이나 빨리 들어가서 정규직으로 일하면 편해질 거라는 유혹을 받는다. 그냥 어려운 길 말고 공채를 노려서 자소서도 첨삭받고, 인적성 스터디도 하고, 면접 연습도 하고 누구나 다 하는 길로 자꾸만 돌아가고 싶어 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처음 다짐했던 글을 다시 읽어본다. 인생에서 어떤 사람을 어떻게 도와주고 싶은지,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으로 보아주었으면 하는지를 다시 되새긴다. 그리고 직장인들의 고민이 담긴 브런치 글을 읽는다. 입사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기 위해서다. 이렇게 잠시 엇나갈 뻔한 정신을 붙잡고 다시 돌아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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