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비내린 Mar 29. 2020

내가 집착하는 대상, 책

14일 차 자기발견

소설 한 편은 첫 문장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다


글쓰기 모임에서 브런치 공동 매거진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다. 다들 끄덕이며 동의하는 분위기였으나 문제는 멤버 두 분이 아직 브런치 작가로 등록되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 자리에서 두 분께 '브런치 작가 신청하기'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이미 브런치 신청 경험이 있는 사람들끼리 멤버 두 분의 글을 봐주며 심사 기준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나의 경우 두 번만에 브런치 작가가 된 거라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을지 나름의 분석을 해봤다.


그중 하나가 자기소개를 임팩트 있게 쓰는 것이었는데, 멤버 분이 초안을 보여주면 첫 문장을 읽고 느낌을 얘기해주며 첨삭해줬다. 자소서를 쓸 때 항상 첫 문장을 잘 써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직접 쓸 때는 몰랐지만 글을 읽는 입장이 되니 첫 문장이 계속 읽을지 말지를 결정한다는 것이 이해가 됐다. 그렇다면 내 글의 첫 문장은 흥미롭게 읽히는가 하면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번 글에선 첫 문장을 고심해서 써보려 한다.




J는 서울에 있는 고시원에서 2년 반을 살았다. 그는 침대 하나와 책상을 제외하면 한 평도 안 되는 좁은 방에 있는 것이 답답했다. 다행히 근처에는 종합쇼핑몰인 코엑스가 있었다. 그는 주말이 되면 종종 코엑스를 들리곤 했다. 보통은 코엑스에서 옷이나 화장품을 구경을 하거나 식당을 들리지만 그는 수많은 옷 가게와 화장품 가게를 지나쳐 영풍문고로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J에게는 독특한 취미가 있는데 베스트셀러만 모아놓은 서가나 장르별로 모아놓은 곳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표지가 있으면 카메라로 찍는 것이었다.


그가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표지 디자인이며, 다른 하나는 제목이다. 이 두 가지가 시선을 한 번에 끌어당겨야 그 책은 J의 피사체로 선택된다. 충분히 봤다고 생각이 들면 마치 책 한 권을 읽은 것 마냥 든든한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이 사진들은 나중에 도서관에서 책을 검색할 때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J에게 선택된 책들은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 그가 습관적으로 모아 온 사진들은 다음번에 찍어 올 사진들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모아둔 책 사진의 대부분은 J의 기억에 잊혔다가 갤러리를 정리하는 시점에 함께 사라졌다. 선택된 책들은 도서관을 거쳐 J의 손에 들어온다. 그는 자신의 안목에 뿌듯해하며 첫 장을 넘긴다.


알다시피 J의 이야기는 내 얘기다. 스스로도 책벌레라며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야기 중독자'이다.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스마트폰에 잠시 빠져 책을 제쳐 두었던 시절을 제외하고 책을 손에 놓은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이동하는 시간이나 친구를 잠시 기다리는 시간에도 책을 꺼내어 틈틈이 읽곤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독서 습관을 길러오면서 나만의 독서 방식을 정립했는데,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하나, 두 권 이상의 책을 동시에 읽는다.

나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읽는 책이 달라야 된다고 생각한다. 책의 장르에 따라 깊이나 읽는 무게가 다르다. 가령 소설은 가볍게 읽기 좋기 때문에 이동하거나 식사를 할 때(그렇다. 많은 분들이 식사할 때도 공부하냐고 놀란다. 공부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라고 해두자. 식사하면서 유튜브 보는 거랑 같다.) 주로 본다.


나는 저녁형 인간이라 오전보다는 늦은 오후에 집중이 잘되는 편이다. 식사를 끝내고 정리를 하면 9시인데 그때부터는 인문학이나 전문서적을 읽는다. 동시에 여러 책을 읽을 때 유의할 점은 같은 장르의 책을 읽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 번은 소설책 두 권을 동시에 읽은 적이 있는데 나중에 되니 책 속의 인물이 뒤섞여 어느 책에 어떤 내용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 뒤로 소설은 한 번에 한 권씩 읽기로 했다.


둘, 끌리는 문장은 모두 기록한다.

책 속의 문장을 수집한 지는 이제 3년 째다. 이전에는 책을 읽으면 끝 하고 바로 다음 책을 읽었는데 책을 충분히 이해하는 시간 없이 곧바로 다른 책으로 넘어가면서 많은 부분이 기억에서 사라졌다. 책 표지를 보면 '아, 이거 봤던 거네' 하면서도 막상 어떤 내용인지 기억나지 않아 안타까웠다. 그래서 웬만하면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은 구절들을 폰 메모장에다 바로바로 기록하는 편이다. 이렇게 모아 온 문장들은 특히 글을 쓸 때 빛을 발한다. 적절한 말을 인용하고 싶으면 메모장을 꺼내어 검색해본다. 딱 맞는 문장을 찾으면 그동안 귀찮음에도 꾸준히 글을 모아 온 자신이 뿌듯해진다.


셋, 목적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다.

세 번째는 이번 년에 들어서 새로 들인 습관이다. 전에는 끌리는 대로 책을 골라 읽었다면 요즘엔 목적성을 가지고 책을 고른다. 재미로 읽었던 수준에서 나아간 것이다. 관심 있는 분야가 정해지고 일을 하면서 부족함을 느끼는 순간이 오면 책을 읽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 분야의 권위적인 학자나 전문가의 글을 읽으려 하는 편이다. 요즘에는 책을 통한 공부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코로나 19 상황으로 도서관이 문을 닫아서 책을 빌리는 게 어렵게 됐다. '이야기 중독'인 내게는 미칠 노릇이었다. 집에 뒀던 책을 모두 읽고 나자 더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하고 e북을 읽게 됐다. 종이책을 더 좋아하는 나로선 e북이 영 어색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오래 읽어도 생각보다 눈에 피로도가 덜해서 자주 이용하고 있다. 다시 도서관이 문을 열게 되면 종이책으로 돌아가겠지만 e북의 이점도 이미 알고 있는 터라 둘 다 번갈아가며 읽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꽃비내린의 책 사랑 끝판왕을 알고 싶다면 아래 글을 읽어보시길.

https://brunch.co.kr/@rainofflowers/22


이전 13화 취업이란 필터를 걷어내면 꽤 괜찮은 삶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