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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Mar 30. 2020

내 집이 없는 삶

15일 차 자기발견

기술 과학 분야의 베테랑 저널리스트 클라이브 톰슨은 <생각은 죽지 않는다>에서 새로운 틀은 우리가 '무엇을 생각할지'뿐만 아니라 '어떻게 생각할지'까지 결정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글쓰기는 줄어든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늘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만 매일 1,540억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고, 5억 개가 넘는 글이 트위터에 올라오고, 160억 개의 단어가 페이스북에 올라온다고 합니다. (중략) 이 모든 변화의 매개가 바로 글쓰기입니다.
<손바닥 자서전 특강> 262~263p


책은 죽었다


글쓰는 습관에 관한 모임에서 출판시장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1년 동안 책을 한 권 이상 읽은 독서인구는 50.6%라는 암울한 통계 수치를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주변에 책을 읽는 사람이 많이 없다는 건 모임의 멤버 모두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앞으로 텍스트의 가치는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나요?" 모임을 주최하신 분이 물으셨다. 나는 이렇게 답한 걸로 기억한다.


"최근에 텍스트보다 영상 위주의 콘텐츠의 인기가 높은 건 사실이지만 책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무래도 영상보다는 텍스트가 더 밀도가 있어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기에는 책이 적합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텍스트를 매개로 다양한 형태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에 책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출판시장이 죽었다고 하지만 책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독립출판이 등장하면서 개인이 자비로 출판이 가능해졌고, 일반인이 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일도 더 이상 꿈같은 일이 아니게 되면서 자기만의 책을 내고 싶은 사람들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글쓰기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많은 사람들이 막상 책을 쓰려고 하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 한다.


나 또한 책을 내는 건 취업하고 한참 뒤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블로그를 열고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브런치 작가 심사에도 통과해 매일 글을 쓰는 지금에선 언제든 노력한다면 책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손바닥 자서전 특강>은 글쓰기 초심자의 길잡이로써 '글쓰기의 두려움을 없애는 법'과 '글을 다듬는 법'을 실제 수강생의 글을 예로 들면서 친절히 설명하고 있다.


나는 지난 7일간 이 책에서 설명한 글 구성 방법을 참고해 여러 방식으로 글쓰기를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만족스러운 것도 있고 한편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손바닥 자서전 특강>은 한 번만 읽고 끝내기엔 충분치 않은 것 같다. 앞으로 글의 방향을 잡을 때 꺼내어 읽을 책이라 생각한다.




집이 없는 삶


4월 말까지 방을 비우는 것. 현재 내가 당면한 상황이다. 6개월간 하우스메이트 계약이 끝나고 옮겨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4월 내내 집을 알아보고 방문할 일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한숨이 나오지만 예전처럼 밖에 나앉을까 벌벌 떨진 않는다.


초등학교 3, 4학년 때인가 언제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바깥세상이 무서웠던 나이의 기억이 떠오른다. 춥고 껌껌한 밤 나는 집 근처 주차장 한구석에 앉아 떨고 있었다. '아빠가 우릴 버렸어!' 나는 다시 따뜻한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무서웠다. 아버지는 늦은 밤에 자식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시고 화가 났던 것 같았다. 아버지는 집에서 나가라며 우리를 모두 내쫓으셨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나는 울다가 어디로든 가야 한다며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어디 갈 곳은 있냐'고 오빠가 물었다. 나는 친구가 근처 아파트에 있다고 말했지만 늦은 시간에 친구의 집을 방문해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치자 주차장에 그대로 있기로 했다. 오빠와 언니 그리고 동생이 어느 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이대로 밖에서 살다 굶어 죽는 건 아닌가 공포에 질렸다. 몇 분의 시간이 영원한 것만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아버지는 화를 풀고 자식들을 한 명씩 찾아 데리고 집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때의 충격은 머리에 박혀서 아버지는 언제든 우리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고시원이 문을 닫았다


서울에 올라오면서 임시로 거주할 곳으로 고시원을 택했다. 보증금도 없고 저렴한 월세에 한 평도 안 되는 좁은 방을 감수하고 지냈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나는 내가 가진 돈으로 월세를 내고 생활비를 써야 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 보니 하루 벌고 하루 먹고사는 삶을 살았다. 모아둔 돈을 조금이라도 쓰는 게 힘들어서 회사를 그만두고도 한 달 텀이 안되어 다시 일을 구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집으로 이사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시원에 살면서 부당한 경험도 있었지만 당장 갈 곳이 없다는 두려움에 꾹꾹 참고 살았다. 그러는 와중에 고시원이 문을 닫는다는 통보를 받았다. 한 달 뒤면 문을 닫는다는 예고도 없었던 일은 아슬아슬하게 지켜온 안정감을 무너뜨렸다. 더군다나 그 시기는 서류 접수가 막 끝나고 인적성 준비로 바쁜 시기였다. "왜 하필 이런 중요할 때에 이런 일이 내게 벌어질까." 나는 어린 시절 집에 쫓겨났던 그 상황으로 다시 돌아간 것만 같았다.


한순간 절망했지만 이내 방 구하는 법을 검색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최악의 상황에 치달으면 뉴스에 들려오는 것처럼 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줄만 알았다. 실제론 상황이 나빠질수록 나는 포기하기보다 냉정하게 방법을 찾으려 했다. 먼저 언니한테 도움을 청했고, 서울에 거주하는 친구들에게 집을 어떻게 알아보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이 정도 보증금과 월세면 적당한 건지, 집 볼 때 중요한 건 뭔지 알아보며 다급하면서도 하나씩 헤쳐나갔다.



그래도 괜찮다


한 달 뒤에 밖에 나앉을 거라 두려워했던 그 날의 예상과 달리 나는 집을 보러 다닌 지 4일 만에 집을 구했다. 그때 알았다. 뭐라도 하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집이 없는 삶이 두려워 회사-회사-회사로 전전하는 굴레를 처음으로 벗어나니 여유가 생겼다. 만약 고시원이 문을 닫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불편한 공간을 참으며 원래 이런 삶이라고 스스로를 낮춰 살았을 것이다.


하우스메이트로 주택의 내 방이란 게 생기면서 더 나은 주거환경에서 사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4월에 이사를 가야 하더라도 고시원에 다시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2년 6개월 간 생활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몇 년 간 나는 계속 이사를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어떻게든 하면 내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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