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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Apr 01. 2020

나를 표현하는 네 가지 수식어

17일 차 자기발견

운이 좋게도 나는 오랫동안 알아온 친구부터 단 하루만 만났던 사람까지 내 인상에 대해 접할 기회가 많았다. 때로는 말로, 때로는 편지로, 때로는 카톡 메시지로 진심 어린 말들을 들었다. 좋은 인연이 되었던 사람들은 퇴사나 이직, 그리고 모임 마지막 날에 편지를 주곤 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편지들을 모아 두고 가끔씩 생각이 날 때 꺼내보곤 했다. 접착이 남아있는 편지 봉투 겉면을 조심스럽게 떼어내어 고이 접힌 편지지를 펴노라면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편지에 언급된 말들을 정리하고 나니 반복해서 언급되는 이미지들이 있었다. 몇 시간만 본 사이에도 인상을 정확히 짚어내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것들은 변함없이 나를 따라올 정체성이란 걸 깨달았다. 많은 분들과 함께 일하고 만나면서 봐온 꽃비내린의 이미지는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한 사람이자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고, 일에 대한 책임이 강하며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었다.  


<편지 속 꽃비내린의 이미지>

꽃비내린만의 색채와 매력이 있는 사람
똑 부러지게 일하는 사람
신뢰 가득하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따뜻한 사람
첫 느낌보다 마지막에 훨씬 향기롭게 기억되는 사람
책임감 있게 일하는 사람
차분하고 감정 절제를 잘하는 사람
당대하고 용기 있는 사람
소신 있는 사람
뒤처지지 않고 무엇이라도 하나 더 배워서 앞으로 나가려는 사람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
현대판 생각하는 사람 - 로댕


하나,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한 사람


"꽃비내린님은 시플랫 같은 분이세요."

이름도 생소한 '시플랫'이란 단어에서 플랫(♭)은 악보 용어로 반음을 내린다는 의미가 있다. 첫날에 자기소개를 할 때 원래 톤보다 낮게 말했는데, 첼로리스트이신 그분은 그 점을 알아채고 악보에 비유해 첫인상을 멋들어지게 말씀해주셨다. 작년 크리에이터 클럽에서 여섯 번의 정기모임을 진행하면서 우리는 '나'에 관해 글을 쓰고 얘기를 나눴다. 그는 마지막 날에 모든 멤버들에게 편지를 주었는데, 편지에는 첫 모임 때 첫인상에 대해 얘기한 게 기억하시냐는 말로 시작했다. 저음의 목소리로 자기 얘기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하셨고, 모임 때마다 내가 꺼낸 경험들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두 번째 모임에서 '후회'에 관한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반 친구들 사이에서 힘들었던 경험을 쓰면서 자칫 모임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지는 건 아닐까 걱정했었다. 한 사람씩 글을 돌아가면서 읽었고, 내 차례가 왔다. 첫 문장을 읽자마자 눈물이 났다. 읽는 중간에 목이 메어 수초 간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겨우 울음을 목구멍 안으로 삼키고 나자 마저 읽을 수 있었다. 그전까지 가벼웠던 대화는 나를 기점으로 진지한 대화로 변했다. 한 사람씩 자기 경험담을 꺼내며 자기도 친구 사이에서 힘들었던 적이 있다며 공감한 분도 있었고, 자기 친구가 그런 경험을 하고 있었는데 옆에 보는 친구로서 힘들었다고 얘기한 분도 있었다.


단지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 마음속에 품고 사는 상처들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저 아무도 나서지 않은 그 길을 터준 사람이었다. 편지를 주신 분은 내 경험들이 공감이 되고 생각하게 만든다고 하셨다. 그리고 본인만의 색채가 있어 인상에 남았다고 덧붙였다. 학창 시절부터 나는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는 삶을 꿈꿨고 대단한 걸 성취해야만 그런 사람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더라도 과거에 힘들었던 경험을 극복한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겐 그 자체가 영감이자 롤모델이었다. 이제 말에서 글로 옮겨와 경험과 생각을 꺼내 놓는 지금,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에게 시플랫이다.


 

둘, 진정성이 있는 사람


나는 정직함을 중요하게 여긴다. 정해진 규칙은 남이 지켜보지 않아도 반드시 지켜야 하고, 빈말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이 가끔 힘들 때가 있다. 나는 마음이 동해야지만 칭찬을 하는 편이라, '옷이 예쁘네요', '염색 잘 어울려요' 등의 외적인 면에 대한 칭찬들을 하는 게 어색했다. 반면에 그 사람이 내게 해 준 배려와 조언에 대해선 무엇이 좋았는지를 얘기한다. 상대에게 고마움을 말할 때 일정한 패턴이 있다. 바로 칭찬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 도움을 받았다면 '고마워요'에서 끝내도 되지만 정말 큰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되면 시간을 내어 감사의 말을 전한다. 가령 "제가 이러이러해서 어려웠었는데 oo님 덕분에 빨리 끝낼 수 있었어요. 앞으로 oo님이 말씀하신 부분을 명심해서 할게요"라는 식으로, 상황 설명과 상대가 준 도움 그리고 배운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설령 솔직한 조언에 상처를 받더라도 그 조언이 향후에 인간관계에서든 일에서든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감사하다고 말했다. 당시의 창피함과 부끄러움은 한순간이지만 부끄러움을 피하려 숨긴다면 평생 고치지 못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일에 임했기에, 팀원분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 따뜻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생각한다.



셋, 일에 대한 책임이 강한 사람


평소에 쓰지 않는 서비스도 '내가 운영하는 서비스'가 되면 나는 서비스의 열성 팬이 된다. 여러 회사를 다녀보면서 회사에 일하는 동안에는 내가 일하는 회사와 서비스에 애정을 가지고 일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음원 스트리밍 회사에 다녔을 때는 고객이 남긴 문의에 답변하는 업무를 주로 했다. 수많은 불만 문의에서도 서비스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글을 남기는 고객이 있었다. 응원과 칭찬의 리뷰를 볼 때면 내 서비스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었다.


서비스에 오류가 생겨 불만 글이 올라오면 최대한 빨리(긴급하면 1시간 내, 그렇지 않으면 개발자 스케줄에 맞춰서 빈 시간에) 개발자에게 달려갔다. 오류를 해결하기 위해선 해당 오류의 '재현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개발팀에서 문제를 재현 가능한 수준의 기본 정보를 전달하고,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한지 물었다. 이 과정에서 코드 몇 줄로 수정 가능한 문제들을 찾아냈고, 오류 문의가 들어오고 난 다음날이나 이틀 뒤에 hotfix로 배포해 빠르게 해결한 적이 많았다.


 앱에 기본적인 기능도 없냐며 분풀이하는 리뷰가 달리면 '하고 싶어도 제약 때문에 못하는 건데'하며 속상해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고객이 탈퇴하지 않도록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한지 알아보고 최선을 다해 답해주려고 했다.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할 수 없는 것에 한해서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고객의 요구를 충분히 고려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하는 것이다. 고객의 말을 귀담아듣는 자세로 답변함으로써, 처음에 불만을 표시했던 고객이 팬이 되어 우리 서비스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는 것은 내가 맡은 일 애정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만든 서비스를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개선할 의욕이 없어진다. 그저 적당히 시킨 만큼만 일하게 된다. 나는 적당히 한다는 말을 싫어한다. 더 바꿀 여지가 눈에 보이는데 귀찮다는 이유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로 넘기는 걸 못 배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한계까지 해보고, 역량이 부족하다 싶으면 공부를 해서라도 개선한다. 이것이 내가 정의하는 책임이 강한 사람이다.

 


넷,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


"나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서비스를 개선하는 서비스기획자가 되고 싶어" 서비스기획자 중에는 UI 설계를 잘하는 사람이 있고, 프로젝트 매니징을 잘하는 사람, 그리고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아는 사람도 있다. 채용공고를 보면서 직무 간의 전문 영역이 점차 모호해지고 있는 것을 많이 느낀다. 특히 서비스기획과 같은 제너럴 한 직무는 자칫 이도 저도 아닌 커리어 될 위험이 있다. 그래서 나는 리서치 경험과 데이터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데이터 수집과 분석 그리고 여기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서비스로 구현할 줄 아는 기획자가 되고 싶다.


어떤 영역에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은지 분명해지자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확실해졌다. 첫째는 도메인 지식으로 이커머스, 미디어, 플랫폼 등의 사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지표와 이용자의 욕구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나는 직무에 상관없이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현직자의 생각과 코멘트를 읽는다. CEO 연사, 현직자 인터뷰, 신기능 관련 홍보 기사를 특히 눈여겨보며 앞으로 이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짐작해본다.


둘째는 데이터를 해석하는 법이다. sql과 같은 언어를 배우긴 했지만 그뿐, 사용할 일이 없어 매번 배울 때마다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분이었다. 서비스기획자는 프로그래머가 아니다. 이 사실을 인지하면 프로그래밍 언어는 스킬적인 요소일 뿐 핵심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는 대신 데이터를 통해 서비스를 개선한 사례들을 공부하고 있다. 일부 스타트업에선 그로스 해킹을 통해 이탈률을 줄이는 과정을 슬라이드로 공유해 놓기도 하는데, 이런 자료를 발견할 때면 가뭄의 단비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렇게 실제 사례들을 보면서 회사에 들어가서 어떤 프로세스를 거치는지 이해하려고 한다.


최근엔 UX 디자인 방법론 강의를 매일 아침 8시에 듣고 있다. 사용성을 개선한다는 점에서 서비스기획자와 UX디자이너의 일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채용공고에도 두 직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UX디자이너 경력직 자리에 서비스기획 경력자를 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서비스기획만 할 거야!'라고 단정하기보다 바운더리를 넓혀 '일의 관점'에서 접근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비즈니스 마인드를 기르는 것이다. 그동안 눈에 보이는 UI와 사용성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UI와 사용성만으로는 기획일이라고 할 수 없다. 기업은 이윤 창출이 목적이기 때문에, 서비스기획자는 앱을 예쁘고 사용하기 쉽게 만들기만 해선 안된다. 도메인 지식을 배우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도 결국 이걸 가지고 수익을 어떻게 만들어낼지를 알아내기 위함이다. 서비스기획자는 이 서비스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 즉 핵심 가치를 이해하고, 이를 기준으로 삼아 신기능 추가, UI 변경 등의 기획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알기 위해선 현재 잘 나가는 서비스들을 사용해보고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지 그리고 어디서 돈을 벌고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런 공부방식은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교수님께 배우고 정답을 맞추는 공부보다 어려운 건 맞다. 하지만 정답이 없기에 오히려 자유롭게 배울 수 있다. '이렇게 분석하는 게 맞을까'하는 고민의 연속이지만 미지의 영역조금씩 다가가는 과정이 즐겁다. 배움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배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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