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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린 Apr 09. 2020

‘객관적인’ 역사는 가능할까요?

한국의 취준생이 바칼로레아 철학에 답하다 (9)

'객관적이다'라는 말은 철학적으로 주관의 작용과는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번 질문은 역사는 객관적인 사건들의 나열인가에 대한 물음이라 할 수 있겠죠. 이 물음의 답은 '아니다'입니다. 역사의 발전 법칙에 대한 견해 즉 역사관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고대에는 인간의 역사를 봄, 여름, 가을, 겨울과 같은 사계에 비유해 순환하고 반복되는 것으로 보았으며(순환사관), 근대에 와서 물질생산의 주체가 역사를 바꾼다는 마르크스의 사관(유물사관)이 생겨났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역사관이 있지만 여기선 E.H.카의 역사관에 관점으로 얘기하려고 합니다. E.H.카는 역사가의 해석이 개입되지 않는 역사는 의미가 없다고 하며, 당시 객관적이고 분명한 사실만을 역사로 인식했던 랑케의 실증사관을 비판했습니다.


역사가는 필연적으로 선택을 한다. (중략) 그 자신의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며, 인간 존재의 조건으로 그 시대에 얾매여 있다. 역사가 사용하는 말 그 자체, 즉 민주주의, 제국 전쟁, 혁명이라는 말이 그 시대의 뉘앙스를 지니며, 역사가는 이런 말들을 그 뉘앙스에서 분리할 수 없다.


E.H 카는 역사가가 서술하는 과정에서 쓰는 용어에 이미 역사가의 생각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결코 역사는 객관적으로 서술될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고등교육과정에서 배운 국사책을 떠올려 볼까요? 우리가 시험의 정답을 맞히기 위해 암기했던 국사책은 교육과정의 변화에 따라 그 목적도 조금씩 달라져 왔습니다. 아래에 2차 교육과정과 7차 교육과정의 학습목적에 대한 전문을 가져왔습니다.



2차 교육과정(1968년)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중략)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을 드높인다.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7차 교육과정(2002년)

국사는 우리 민족의 정신과 생활의 실체를 밝혀 주는 과목으로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는 구실을 한다. 즉, 국사 교육을 통하여 민족의 전통을 확인하고, 민족사의 올바른 전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정신을 기르게 된다. 국사 교육은 이러한 민족사의 다양한 역사 전개의 과정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학습함으로써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능력을 길러 주는 데 가장 큰 목표를 두고 있다.

(중략)

본 교과서를 통하여 학생 여러분이 민족사에 대한 긍지를 가지는 한편, 건전한 역사의식과 세계 시민 의식을 함께 높이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우리 역사를 삶의 과정으로 이해하여 새 문화 창조와 사회 발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용하는 용어만 봐도 집필 목적이 다른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2차 교육과정은 6.25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이자, 중앙집중 형태의 경제발전을 진행하던 시기에 나왔습니다. 그래서 교과서의 목적도 자주독립, 애국, 국가건설에 봉사라는 내용이 담겨 있죠. 반면 7차 교육과정에선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한국인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자긍심을 기르고, 세계 시민 의식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국정교과서에서도 시대의 요구에 따라 서술하는 내용이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한국의 역사를 고대 - 중세 - 근세 - 근대로 구분한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근세란 근대의 초기를 의미하는데요. 이는 한국사학자들이 '조선시대'를 시대의 4분법에 맞추기 위해 임의로 맞춘 개념이라고 합니다. 만약 조선시대를 중세로 본다면 한국사에서 중세의 기간이 다른 시대에 비해 긴 기간이 돼버립니다. 당시 사학자들은 중세기간이 길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진보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켰다는 식민사관을 옹호하게 되는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때 만들어진 식민사관에 대응하기 위해 한민족은 일제 시대 이전에 외세의 영향을 받아 근대 문물을 들여왔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저도 국사책을 공부하면서 제너럴 셔먼 호 사건과 같은 외세의 침범과 근대 문물에 대한 서술이 강조되었다고 느꼈는데요. 민족사관의 입각한 서술이었기에 그렇게 느껴졌지 않았나 싶습니다.


E.H.카는 위대한 역사는 현재의 여러 문제에 대한 통찰에 비추어야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역사는 역사적 사실의 정확성을 확인하는 것에 머물면 안 되고, 현재에 입각해 의미 있게 재구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E.H.카의 위대한 말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를 기억하고,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비추어 역사를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자료]

https://www.neti.or.kr/neti-sub050402/articles/do_print/tableid/neti-sub050402-board/id/5574

http://contents.history.go.kr/front/ta/view.do?levelId=ta_h71_0020

https://ko.wikipedia.org/wiki/%EC%97%AD%EC%82%AC%EA%B4%80

https://www.hankyung.com/news/article/2013053157171

이미지 출처: Photo by Roman Kraf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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