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실히 살아가며 성실히 사랑하기

영화 <남은 인생 10년>

by 사랑의 천문학

추상에 구체를 부연하는 작품들의 힘을 믿는다. 그중 어떤 영화들의 엔딩 크레딧은 이제 나의 이야기를 해보라는 물음표가 되기도 한다. 시한부라는 소재는 영화뿐만 아니라 인류 문화예술의 유구한 소재였지만, <남은 인생 10년>은 이 층위를 다시 분석해 낸 작품이었다. '시한부'라는 추상에 '10년'의 제한 조건을 다시 추가하였고, 주인공의 애매해진 여생과 그럼에도 소중했던 사랑이 더욱 애달프게 느껴졌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는 내게 10년이 남았다면, 이라는 상상을 잠깐 해보았다. 하루를 소중히 여기라는 말로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생각해 보라는 클리셰가 있지만, 만약 그게 하루가 아닌 10년이라면? 모든 걸 미리 놓아버리기엔 긴 시간이지만 무엇이든 새로 시작하기엔 너무나 짧은 그 시간을 나는 어떻게 지낼 것인가. 점점 더 핏기가 사라지는 삶은 희망을 차례로 박탈할 테고, 메마르고 푸석해질 테지만 그럼에도 10년을 견뎌내야 한다. 소중했던 것들은 소중했던 것으로 정리하고, 그러면서도 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데에는 열심히어야 할 애매한 시간이 다시 10년이기도 하다. 10년이면 나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부터, 10년이 지나도 여전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으로 영화의 주인공은 이 10년을 시작했을 것이고, 기약 없는 치료와 다가오는 날짜에 아마도 마음이 많이 무너지지 않았을까. 그 무너짐이 끝내 붕괴로까지 이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사랑이었다.


사랑은 주인공의 메말라가는 삶을 채색했다. 사랑은 그러나 동시에 무력했다. 사랑만으로 저지할 수 있는 병의 진행은 없었다. 대단했던 사랑은 동시에 초라했다. 희망은 사람의 본능이다. 삶을 지탱하는 건 추억과 희망이고, 어쩔 수 없이 내일을 살아야 하는 대부분의 우리는 크고 작은 희망을 품어야 때론 거지 같은 생을 유지할 수 있다. 포기와 체념은 그래서 아프다. 무언가를 자꾸 원하고 소원하려는 우리의 본성을 역행하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현실을 잊게 만들지만, 다시 그 현실은 사랑마저 놓게 만든다. 행복했던 여행에서 주인공은 이별을 고한다. 사랑의 힘으로 10년을 버틸 수 있었던 그녀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진 상황에서 내린 결론이었다. 그 10년 동안 그녀에게 세상은 곧 사랑이었고 그 사랑이 세상의 전부였으리라. 그러니 그녀의 입에서 발화된 작별 인사는 이별의 말임과 동시에 유언이었다. 사랑이 너무 커서, 이 사랑을 계속 누린다면 죽기가 두려울 거라는 그녀의 말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스러운 고민과 머뭇거림이 있었을지 짐작할 수 없다. 사랑의 포기는 삶에 대한 체념과 같은 의미였다. 그래서 그녀는 덧붙였다. 이제, 죽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마지막 떠나는 길에 우리가 두고 가야 할 건 미련이고 아쉬움이다. 아마도 사랑을 계속 지켜냈다면 떠나는 걸음이 너무 무거웠을 테다. 사랑하면 옆에 있고 싶은 게 당연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의 안녕이 더욱 먼저다. 그 마음이 헤아려졌기에, 남자 주인공 또한 결국 이별에 동의한다.


이별은 결과지만 이별을 만든다는 의미의 '작별'은 과정이다. 다정한 인력이 서글픈 척력이 되어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인력이 척력이 되었다는 건, 다른 누군가 한 명이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등을 돌린 여자 주인공이나 그 등돌림을 지켜봐야 했던 남자 주인공이나, 마음이 미어지고 또 미어졌을 테다.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에게 삶을 '착실히' 살아달라고 말했다. '성실히'도 아닌 '착실히'라는 말이 괜히 눈에 밟혔는데, 그건 아마 자신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었던 하지만 너무나 살고 싶던 삶을 남자 주인공만큼은 알뜰하고 정성스럽게 보듬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부탁을, 남자 주인공은 착실히 이행했을 것이다. 이행하다가, 남자 주인공은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은 여자 주인공의 병실로 향한다. 누워있는 그녀에게 건네진 말이 '애썼어'였다. 10년이 남아있다는 걸 알기 전의 삶과 이후의 10년 동안의 인생을 포함한 그녀가 살아낸 모든 역사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의 최선의 언어였다. 그리고 여기엔, 여자 주인공의 애썼음 덕에 자신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게 됐다는 고마움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나의 마지막 순간에, 나 역시 꼭 듣고 싶은 말이 '고생했어' 혹은 '애썼어'다. 때론 착실하고 때론 불성실했지만 어쨌든 살아낸 모든 날들에 대해 작은 존중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유독 더 애를 많이 썼을 마음의 여자 주인공에게, '애썼어'라는 말이 부디 삶의 마지막을 향하는 걸음에 작은 용기가 됐기를 바랐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주인공과 그를 보내야 하는 다른 이의 이야기,라는 건조한 문장에 '10'년을 특정하여 양감과 질감을 부여한 영화였다. 그러면서 나오는 길에, 영화는 내게 네게도 10년이 남았다면 어떨지 물었다. 생을 놓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을 테지만, 긴 계획 무엇도 세울 수 없다. 그러니 아마도 당분간은 평범하게 지금처럼 회사를 다니지 않았을까 한다. 어떤 날은 10년이 남았다는 것도 잊고 무탈한 날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10년이 문득문득 다시 체감되고, 많이 무섭고 두려워하며 다가오는 시간에 어찌할 줄 몰랐을 테다. 그러나 다시 든 생각은, '10년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이 그리 길기는 할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사는 데 소질이 많지 않아 여전히 삶은 어려운 구석이 참 많고, 이 어려움들이 어느 정도 해소될 때쯤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있을 것 같다는 불안함이 문득 스칠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10년보다는 많더라도 그게 또 아주 유의미하게 길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결국 여자 주인공이 당부한 '착실히'는, 그녀를 보내야 했던 남자 주인공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부탁이다. 하루하루를 당장이라도 내일 세상이 끝날 것처럼 절박하게 살라는 게 아니라, 삶 전체를 돌이켜보았을 때 이 정도면 착실은 했다고 할 정도의 온도를 간직하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차곡차곡 하루를 포개어 삶을 나아가라는 따뜻한 당부였다.


그리고 다시, 사랑이다. 사랑이 있었어도 주인공의 마지막을 더 미룰 수는 없었다. 사랑은 한없이 유약하다. 사랑은 현실의 문제 대부분을 해결할 수 없다. 사랑은 사랑이다. 사랑은, 어쩔 수 없이, 사랑이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현실의 문제에 효용이 없다고 사랑이 무가치하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사랑해서 우리의 삶은 메마르지 않을 수 있다. 살아내는 기간을 정하는 건 누구의 몫도 아니지만, 그 시간을 채색하는 건 사랑의 역할이다. <남은 인생 10년> 주인공이 눈을 감을 때도, 그 색이 따뜻함이 되어 마음 안에서 울림이 되었을 것이다. 불행했던 시간이 아니었을 테니, 그녀에게는 후회나 슬픔은 그리 많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다만 소중한 것을 두고 떠나는 어쩔 수 없는 미련과 아쉬움은 있었겠지만, 세상과의 이별은 그런 것까지 배려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런 것 하나 없이 홀가분하게만 삶을 마무리하는 사람도 아마 없을 것이니, 결국 사랑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으로 우리의 삶을 보듬어준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직업윤리나 소명 정도는 충족하는 게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 있었어도 주인공의 죽음은 피할 수 없었지만, 사랑이 없었더라면 그녀의 남은 인생 10년은 불행과 슬픔 그리고 침울함으로 귀결됐을 수도 있다. 사랑은 그녀의 10년을 착실하게 돌보았다. 누구에게든 유한한 삶이 그녀에게는 구체적인 수치로 주어졌지만, 사랑을 했기에 그 시간이 무기력하지만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너무도 소중한 시간에 만난 소중한 두 사람이었다. 사랑함에도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세상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사랑이 대단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낸 날들이기도 했다. 착실히 살아가며 성실히 사랑하기. 영화가 건넨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