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다 기태야, 나 동윤이야

영화 <파수꾼>, 남겨진 동윤의 시점으로 떠난 기태에게 쓰는 편지

by 사랑의 천문학

어이, 친구. 나 동윤이야. 오늘은 오랜만에 친구 생각을 했어. 어떤 때는 네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고, 어떤 때는 일부러 너를 기억해내기도 해. 기태야, 서른이 넘었어도 세상은 어렵고 많이 외롭다. 너를 잃은 이후에도 다시 많은 것들을 가지기도, 놓치기도, 두고 오기도, 버리기도 했어. 그저 애새끼였던 그날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여전히 치기 어리고 철이 없지만, 그래도 삶에 필요한 어떤 기능들에는 능숙해지는 것 같기도 해. 나의 말로 누구를 찌르지 않고, 나를 찌르려 달려드는 말들을 운 좋게 피할 수도 있어. 그때는 몰랐던 이 소박한 작은 기술이 나를 지켜주는 중이야. 이런 게 어른스러움이라면 나는 혼자 어른이 돼 가나 봐. 그게 쓸쓸하고 미안해. 늘 네 생각을 하지는 않아. 나는 나를 아직도 완전히 용서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를 돌보고 내가 돌보아야 할 것들을 보듬으려고 하고 있어. 그래서 가끔은, 너를 잊어. 그러다 삶이 너무 초라해지는 순간에, 티 없었던 너와 나의 웃음이 생각나기도 해. 철길에서의 공놀이, 함께 갔던 인천, 몰래 했던 일탈. 작은 것들에 환하게 행복했고 역시 불행하게도 죽을 듯 절망했던 날들이었지. 정말이지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게, 그 시절의 우리에게는 너무 큰 전부였어. 오랜만에 읽었던 책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마지막에는, 제제가 자신이 너무 일찍 철이 든 것 같다고 회고하는 장면이 있더라. 기태야, 철듦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혹시 우리가 아니 나 혼자라도 조금 철이 들었더라면, 우리는 지켜질 수 있었을까?


변명의 시간을 아직도 가지는 중이야. 나도 내 한 마디가 초래할 결과를 미처 몰랐어. 이건 정말이야.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네게 그 말을 했을 리가 없어. 명백한 위악이었어. 더 모진 말을 골랐던 것도 사실이야. 말을 무기로 썼어. 너를 할퀴려고 작정했었지.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될 줄은, 진심으로 몰랐어. 안 보고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 꼴도 보기 싫었던 게 맞으니까. 꼴도 보기 싫어졌던 이유조차 어느덧 희미해지고, 너란 존재의 선명함만 뚜렷해질 거라는 걸, 나는 알 수 없었어. 기태야, 너도 어렸지만, 나도 어렸어. 그래도 보통 어린 소년들의 실수는 용서받을 기회를 부여받거든. 세상은 그래도 그들에게는 관대한 측면이 있더라고. 그날 내가 네게 건넨 말들이 철없던 날의 실언이었어서,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말하고 다시 너와 대판 싸우든 화해를 하든 할 수 있기를 바란 적이 많아. 내 실수는, 실수가 아니가 되었지. 다만 나는 어렸다고, 어렸기에 몰랐다고, 실수의 결과가 참혹할 뿐이라고, 계속해서 스스로 변명을 하지 않으면 도무지 견딜 수 없었어. 세상의 어떤 말과 행동은, 그 의도가 어떠했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는 걸 나는 너무 이른 나이에 슬픈 방식으로 알아버린 것 같아. 전부 다 진심은 아니었지만 전부 다 거짓이 아니기도 했고, 그래서 하고자 했던 말을 더 날카롭게 다듬었어. 정말 미안해. 억울하기도 했어. 세상에 일부러 못나고 뾰족하게 태어난 모든 말들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데, 왜 하필 나의 언어는 그랬을까. 기태야, 지금 돌이켜 보면 우리가 서로에게 생각보다 더 커다란 소중함이었어서 그랬던 것 같아.


기태야, 지금 나이에 우리에게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우린 서로를 영원히 미워하겠지만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 같아. 왜냐하면 고작 이 나이가 됐을 뿐임에도, 내 세상을 우정과 사랑 같은 것 위에 존립시키지는 않거든. 기태 네가 외로운 사람인 걸 모르지 않았어. 너의 결핍을 명명할 순 없었지만 느낄 수는 있었지. 기태야 난 그걸 제대로 모르는 주제에 어설프게 너무 많이 알아서, 너를 가장 아프게 할 말을 크게 고민하지 않고 고를 수 있었어. 그게 수월했던 게, 아직도 원망스러운 지점이야. 가끔은 기태 네가 하늘에서 나를 보고 있다면 어떤 마음일까 부질없는 상상을 하기도 해. 멀쩡히는 살아가는 듯한 모습이 행여 네게 두 번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가끔은 덜 크게 웃고 덜 소란스러우려고도 해.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이제는 너도 나를 조금은 용서했을까, 역시 또 헛된 바람을 품어보기도 하지. 그럴 때마다 마음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 나는 어떤 회신도 너로부터 들을 수 없으니까. 내가 그날 잃어버린 게, 놓아버린 게, 버린 게 무엇인지, 그 무게를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절절히 깨닫는 것 같아. 기태야, 그 시절의 나는 무언가를 허투루 넘기고 낭비하며 대충 신경을 끄는 데는 도무지 소질이 없어서, 너를 온 힘을 담아 나쁜 말로 찌르고 말았어. 그리고 그 선택을 만회하고 용서받을 어떤 가능성도 없어지게 되었지.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면 너는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새끼, 잘 지내다 왔냐?"며 나를 반겨줄까? 이것조차 용서받고 싶다는 내 이기심이 만들어낸 멍청한 상상이겠지. 기태야, 나는 여전히 나밖에 모르는 사람일 뿐이다.


지혜로움과 현명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그 시간을 대수롭지 않게 견딜 능숙함만 있었어도 참 좋았을 것 같아. 서로가 겪었던 그리고 겪어낼 상실에 대한 헤아림이 우린 참 모자란 소년들이었어. 기태야 나이를 먹으니 좋은 게 몇 가지 있더라. 우리가 목숨 걸고 몰래하고자 했던 비행들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고, 그래도 돈을 벌면서 가고 싶은 곳에 가거나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걸 가끔은 할 수도 있는 여유도 생겼어. 그리고 무엇보다, 진심으로 크게 상처받는 일이 드물어졌어. 그래서인지 누군가에게 역시 온 마음으로 미움을 뱉어내지도 않게 된 것 같아. 그냥 나는 죽지는 않고 있다 보니, 어느 순간 배우게 된 것 같아. 세상 모든 서글프고 슬픈 일들에 깊은 마음앓이를 할 필요는 없더라고. 누군가, 그 시절 내 방의 우리 둘에게 이 이야기를 알려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는 이렇게 가정법에서만 서로에게 마음으로 닿을 수 있다는 게 많이 슬프다 친구야.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됐다는 말, 난 아직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어. 뱉어낸 후회로 사람을 빚을 수 있다면, 나는 진작에 너를 다시 살리고도 남았을 거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라고 묻는 네게, 잘못된 건 없었다고 했었지.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됐다고.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정말 없었는데, 잘못은 그냥 우리 안의 작고 못난 뒤틀림 그거 하나였는데. 그땐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었어. 그게 강한 거라고, 나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행동이라 착각했지. 기태야 나는 너를 잃고 내 지난 어리석음 위에 생을 쌓아가고 있어. 쉽게 희석되지 않은 죄책감의 성은 참 견고하다. 이제는 몇 번이고 말할 수 있는데 말이야. 너는 여전히 내게 필요한 친구라고.

기태야. 배키와 나와 너의 날들은, 너무 지나치게 순수한 시절이었어. 마음을 다스릴 기술이 부족한 어린 소년들에게, 순수함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 듯 해. 영악하지 못한 순수함은 우리에게 상처였고, 파국의 발단이었지. 그때 우리가 목숨을 걸었던 일들 중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 것들은 많지 않아. 기태야, 우린 무엇을 위해 그 시절 그렇게나 전부를 잃은 듯 아파해야 했을까. 소란했던 어린 날들은 그저 과잉이었는데 정작 내게 정말 소중한 너는 상실이라는 이름으로만 남아버렸어. 허무하지 않니? 기태야 나는, 아마도 계속 그리고 오래도록 너에 대한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며 시간을 돌이키고 싶다는 안쓰러운 희망만 되삼키고 또 되삼킬 거야. 내가 나를 용서하고 성의껏 착실히 내 삶을 살아가는 게 기태 네가 바라는 일일 거라는 주위의 얘기를 아무리 들어도, 나만큼은 그 순간을 한 순간의 실수라며 치부하지를 못하겠어. 그래도 살아는 갈 거야. 감정이 찾아오면 찾아오는 대로 느끼고 미안해하고 후회하면서, 살아는 갈 거야. 무엇을 갚아나가기 위함은 아니야. 그럼 뭐 해, 너는 돌아올 수 없는데. 나는 다만 네게 응답을 들을 수 없는 용서를 구하며, 너와 내가 지금 같이 있었더라면 어떤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을지 내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확인하고 싶어. 내가 그 말을 삼켰더라면, 우린 졸업을 하고 군대도 가고 연애도 했겠다, 그치. 그러다 둘 다 장가를 가고, 아기도 낳고, 어쩌면 서로의 아이들을 가장 예쁜 조카처럼 대하며 용돈을 주기도 했겠지? 아마 내가 네게 더욱 미안한 건, 말도 안 되게 평범했을 우리의 미래까지 박탈했기 때문인 것 같아.


기태야 나는 성장통을 믿지 않아. 가장 소중한 걸 잃어버림으로써 자라게 되는 게 정말 자람인지 나는 모르겠어. 우리에게 그 아픔은 아픔 그 자체였고, 재앙이었고 재난이었을 뿐이야. 어른이 되며 좋은 점들 중 하나는, 그래도 삶의 어떤 필요한 순간에는 이것저것 재지 않고 계산하지 않게도 되었다는 것 같아. 그래서 뒤늦게, 네게 하고픈 정직하고 진실뿐인 말로 글을 마친다. 보고 싶고, 그립다. 그때 너무 외롭게 해서 아직도 참 많이 미안해. 부디 이제는 조금 따뜻할 수 있기를.


친구였던, 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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