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만 언제나 새삼스러운 상기가 필요한 가치, '묵묵한 성실함'
나이 듦에 따라 찬사하게 되는 가치들 중 하나가 '묵묵한 성실함'이다. 제 몫을 묵묵히 해내는 일이 숭고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화려하지 않아도 해야 할 것들을 담담히 수행하는 모습에서 일종의 윤리도 발견된다. 제 때에 제 일을 성실히 해낸다는 건 서술의 평이함만큼이나 쉬운 게 아니다. 우린 보통 '역동'과 '혁신'에 더 높은 값을 매기고는 한다. 틀린 관성은 아니다. 어쨌든 무언가를 더 높은 새로운 층위로 옮기거나 움직이게 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어진 일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찾아내고 수행하도록 어릴 때부터 요구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상의 변혁은 그런 놀라운 발견들이 기폭제가 되어 이루어지고는 한다. 그러나 그렇게 어마어마한 새로움을 포착하고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은 안타깝게도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보통 아닌 사람들에게만 가능할 일을 보통의 사람들에게까지 필수 덕목으로 삼는 건 가혹한 처사다. 우린 대체로 평범하고, 평범하기에 세상을 반 보라도 진전하게 할 시야와 깊이를 갖추기 어렵다. 그럴 수 없는 우리의 모자람은 기소되어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경우들이다. 대단한 서사는 없지만 우리 대부분은 해야 할 일들을 열심히 해내는 데에도 벅찬 사람들이다. 그 버거움을 견뎌 묵묵히 할 일을 한다는 건 단순한 인정이 아니라 충분한 존경을 받을만한 일이다.
더 멋진 일을 해내지 못했다고 성실함이 폄하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성실한 사람들의 묵묵한 최선은 세상을 뒤흔들며 앞서나가게 하지는 못해도 더 나빠지게 하지는 않는다. 퇴보를 저지하는 최소한의 방어선이다. 어릴 때일수록 아이들의 장래희망은 휘황찬란하다. 그들 중 다수는 운명에 기각된다. 특별한 재능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각자 삶의 단계에서 해야 할 일들은 꾸준히 발생한다. 이에 묵묵히 성실히 임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매사에 성실하지는 않다. 제 몫의 일을 기피하거나 유기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으며, 적당함으로 매조지으려는 이들도 세상에는 많다. 이만하면 티가 나지 않겠지,라는 안일함으로 해야 할 일들을 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성악설을 지지할 근거를 찾는 것까지는 어렵지만, 사람들이 언제나 진지하게 자신의 일을 묵묵히 열심히 수행해 낼 정도로까지 충실한 존재라고까지 결론을 내리는 건 섣부른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도 자신이 했던 일을 스스로 다시 점검하고, 조금 더 기여할 부분을 찾아보고, 해야 할 일의 완전함에 마음을 더 쏟는 이들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지만 묵묵히 세상을 지탱하는 존재들이다. 문명 단위의 거대한 발전은 누군가의 독창성이나 천재성에 귀인할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안온한 하루는 평범한 이들의 묵묵한 성실함에 큰 빚을 지고 있다.
결국 '태도'와 '자세'의 문제다. 너무 많이 강조되어 식상함이 느껴지지만, 정작 그 기본이 온전히 지켜지는 경우를 발견하는 건 어렵기도 하다. 어떤 일을 하게 되든 성실함이 필요하다는 상식은 종종 크고 작은 유혹들에 위협받는다. '이만하면 됐지' 혹은 '이 정도면 괜찮겠지' 등, 당장 할 일에 큰 해를 끼치지 않지만 내가 편해질 수 있는 사고방식은 세상에 너무나 많다. 묵묵한 성실함은 이들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고 있는 거룩한 투쟁과도 같다. 이전에는 나 역시 최선의 대단함을 깔본 적이 있었다. 그 정도면 당연한 거 아니냐며, 더 화려하고 멋진 결과물을 낼 수 있는 독창성과 천재성만을 예찬하곤 했다. 실제로 부끄러운 경험이지만,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동아리 등의 활동 때 내가 선호했던 건 가시적인 결과를 자랑할 수 있는 직무들이었다. 정작 그런 일들을 찾아만 다녔지,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성실히 했는지에 대해서는 겸연쩍음이 든다. 화려함만 추구하느라 정작 중요한 기본을 잊은 건 아닌지에 대한 반성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름 한 번 남길 수 있는 이력을 생성하는 데 더욱 열심이었다. 정작 해야 할 일들의 완성도를 높이고 제대로 해내는 것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성실함의 다른 이름은 '깊이'였고, 나 자신이 검증을 받을 때마다 나는 얕고 알량한 화려함에만 몰두했었다는 진실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내가 소홀하게 대했던 일들의 경험이 밀려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멋진 일을 하고 싶은 건 사람의 본성이다. 세상에는 분명 더 많은 박수와 주목을 집중시키는 일들이 있다. 그런 걸 맡아 잘할 수 있으면 상관이 없다. 하지만 그런 것에 단순히 '발만 걸치는' 건 큰 의미도 실효도 없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할 일이니 열심히 한다,라는 단순한 마음가짐을 매사에 유지하는 게 그 사람에게 더 큰 기회를 창출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묵묵함을 알아보는 이들도 있다는 말이다. 세상에 처음부터 번뜩이는 존재들이 있지만, 묵묵한 성실함으로 조금씩 빛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씩 쌓아 올리는 그 사람들의 내공은 절대 무시할 게 못 된다. 성실하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매사에 충실한 사람들은 드물기에 생각보다 희소한 태도다. 값진 결실은 그 묵묵함으로부터 많이들 잉태된다. 하지만 묵묵함이라는 게 꼭 언젠가 주어질 더 결정적인 기회나 사람들의 인정 때문에만 필요한 건 아니다. 묵묵한 성실함은 어쩌면 당위의 문제다.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윤리이기도 하다. 윤리라는 건 어지간해서는 포기되어서는 안 되는 가치의 층위다. 당연한 이야기는 뻔하지만, 그만큼 중요하기에 반복되는 것이다. '성실하자'는 구호가 크게 감흥을 울리거나 대단한 동기부여가 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매사에 성실하였는지를 반문해 보면, 의외로 스스로가 비겁했거나 모자랐던 기억이 많이 떠오를 수 있다. 우리는 편한 게 좋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니 당연한 부끄러움일 테지만, 그렇기에 묵묵한 성실함은 최선으로 지켜야 될 미덕이고 가치다.
성실함이 꼭 커다란 보상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다. 묵묵히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모두로부터 칭송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건, 윤리의 문제다. 윤리는 아주 거창하게 말하자면 존엄의 영역이기도 하다. 스스로 돌아봤을 때 나를 더 부끄럽게 만드는 건 내가 멋진 일을 수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해야 할 것들에 묵묵히 성실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다. '사람구실'을 잘 하고 있는지를 '존엄'의 일부라 생각한다면, 생각보다 성실함은 우리 삶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미덕이게 된다. 뻔한 진실이라 쉽게 상기가 생략되고, 당연히 성실하고 있을 거라 착각하여 종종 잊게 되는 '묵묵함'이다. 하지만 우리의 하루를 충실히 지키고 각자의 안녕을 보듬는 게 바로 '묵묵한 성실함'이고, 어쩌면 이야말로 결코 쉽게 망각되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가치다. 적당하게 '이만하면 된 건', 어지간해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