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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sonata May 29. 2022

마주 보기

육아일기

2005년 3월 24일


고양이를 무지 좋아하는 나는 야옹이가 테마인 선물을 자주 받는다. 우리 집 소파 옆 작은 테이블 위에는 작년 여름 사촌 동생이 선물해 준 네 마리의 야옹이 목각 인형이 놓여 있다. 지난번 가구 위치를 바꾸면서 방에 있던 녀석들을 몽땅 거실 테이블 위로 데리고 나왔는데, 그때 분명히 나는 네 마리 모두가 앞을 보고 있도록 진열해 두었다. 그런데 며 칠전부터 네 마리의 고양이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상하다 싶어 뒤돌아 서있는 두 마리의 야옹이들을 앞으로 돌려놓은 적이 몇 번인가 된다.


혼자서 의아해하던 내가 어제 오후 드디어 나 몰래 야옹이들의 위치를 '마주 보기' 형태로 바꾸어 놓은 장본인을 찾았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던 시간에 랄라가 꼼지락꼼지락 꽃 테이블 위에 놓인 야옹이 두 마리의 꼬리를 잡고 놀고 있기에 조용히 뒤에서 보고 있으니, 야옹이 한 마리를 그네 타는 야옹이 두 마리와 얼굴을 마주 보고 있게끔 돌려놓고 있었다. "랄라야~ 야옹이들 엄마가 놓아둔 데로 이렇게 앞에 보고 있으면 안 돼?" 하고 물으니 매몰차게 "NO!"라고 말하더니, 나머지 야옹이 한 마리까지 얼굴을 돌려놓아 결국은 네 마리가 서로 마주 보고 서 있게 해 놓았다. 그리고 하는 말이 더 재미있다.


"엄마! No-touch! Okay?"


랄라를 키우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랄라의 행동에서 배우기도 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앞을 보는 눈 밖에 갖지 않은 나. 뭐든지 한 곳을 응시하게끔 놓여 있는 우리 집의 장식품도 결국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나의 단면들이다. 사소한 변화 일지 모르지만 랄라가 옮겨놓은 야옹이들을 바라보며, 늘 예쁜 앞모습만 보여줘야 한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나의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흐트러진 뒷모습을 좀 보일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이들과 마주 보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얼마나 정겹고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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