哀悼
2007년 5월 30일
아주 어릴 때부터 꽃잎이나 조약돌 줍기를 좋아하던 랄라. 아이의 조그만 바지 주머니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꽃과 낙엽과 작은 돌멩이들은 자연을 사랑하는 랄라의 마음만큼이나 순수하다. 유아원에 있는 랄라의 사물함 바구니에는 언제나 민들레나 이름 모를 야생화 몇 송이가 풀이 죽은 채 누워있다. 랄라를 데리러 가면 전력질주로 달려와서 내 품에 안기기가 무섭게 바로 사물함의 꽃들을 꺼내어 내 손에 쥐어주는 랄라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엄마랑 함께 길을 걸을 때도, 아빠랑 둘이서 오후 산책을 다녀오는 길목에서도, 여럿이 함께 공원을 걸을 때도 랄라는 화단의 꽃들을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는다. 웅크리고 앉아서 꼬물꼬물 한 손가락으로 꽃을 만져보는 버릇은 아장아장 걸을 때나 파워레인저처럼 붕붕 날아다니는 요즘이나 변함이 없다. 랄라의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작은 주먹만 한 크기의 화병을 놓아두고 아이가 가져다주는 꽃을 모아놓으면, 랄라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한번 씨-익- 웃어 보이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다.
꽃 이야기를 하다 보니, 며 칠전 우리 곁을 떠나신 금아 피천득 선생님을 기리지 않을 수 없다. 작은 체구에 소년처럼 해맑은 웃음, 그리고 맑은 시상의 소유자였던 분께서 이 세상 인연을 훌훌 털어버리시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5월생 이셨던 선생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던 5월에 이곳을 떠나신 것을 보면, 그분의 깔끔한 성격만큼이나 마지막 가시는 길 또한 남다르지 않았나 싶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오월>
- 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 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이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 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