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insonata Mar 18. 2023

이웃집 토토로

宮﨑 駿

2023년 3월 17일 금요일


宮﨑 駿 (1941-)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스튜디오 지브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그가 일하는 사무실에 붙여 놓은 종이 한 장에 눈길이 멈췄다. 일반 용지에 손글씨로 정갈하게 써 내려간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떠나 주셨으면 하는 사원의 조건>


1. 지혜가 나오지 않는 사원

1. 말해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사원

1. 바로 타인의 힘에 의지하는 사원

1. 바로 책임을 전가하는 사원

1.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마음이 왕성하지 않은 사원

1. 바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사원

1. 자주 쉬거나 지각하는 사원


나는 이 글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가치관을 잠시 엿볼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는 예술가로서, 아버지로서, 동료로서, 노인으로서 살아가는 감독의 모습을 성실히 영상에 담고 있었다. 같은 시간에 맨손 체조를 하고, 노을이 피어오르는 시간에 옥상으로 향하고, 정해진 시간에 물리치료를 받고, 끊임없이 사색하고 고뇌하고 짜증 내고 버럭 하다가, 어느 순간 음악 한 곡에 눈물을 떨구는 노장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근근자자하게 자신의 몫을 해내는 스튜디오 지브리 사원들의 태도는 '노력 없이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표현의 무게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대표작 <이웃집 토토로>는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처음으로 일본 지상파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다. 아직도 살며시 눈을 감으면 그날의 감동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흘러 내가 아기 엄마가 되었을 때, 나는 이제 막 허리를 세우고 앉게 된 우리 랄라 옆에 토토로 인형을 앉혀놓고 <이웃집 토토로>를 함께 감상했다. 그 당시 몽실 통통한 몸매와 함박웃음이 너무도 사랑스럽던 랄라는 이제 스무 살이 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아침 햇살 가득한 거실에서 랄라와 함께 <이웃집 토토로>를 즐겨 보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오래전 일기를 다시 찾아봤더니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2004년 8월 19일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참 재미있는 것 중의 하나가, 좋아하는 노래가 바뀌듯이 보고 싶은 방송 프로그램이나 캐릭터도 바뀐다는 것이다. 우리 랄라의 마음을 사로잡은 첫사랑은 'Blue's Clues'였고, 랄라의 블루에 대한 사랑은 거의 1년 동안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색깔도 블루를 가장 먼저 배웠고, 책에도 블루가 나와있으면 겉장이 나들나들해질 때까지 가지고 다니면서 읽었다. 그러더니 'Boohbah'라는 마치 일본의 큐피드 마요네즈사의 캐릭터 같은 모양을 한 친구들이 나오는 방송을 봄부터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매일 "부바! 부바!" 하면서 다리를 한쪽씩 땅에 올려놓고 몸을 기우뚱하는 몸짓을 한동안 즐겨했다. 그다음에는 'Dora'를 좋아해서 옆집 할머니댁에 놀러 온 아이의 도라 가방을 보며 쉬지 않고 "도라! 도라!"를 외치는 통에 그 가방으로부터 랄라를 떼어놓느냐 진땀 흘린 기억이 있다.

그런데 약 일주일 전 랄라가 혼자서 이것저것 뒤적거리면서 열심히 뭘 찾길래 궁금했는데, 나중에 토토로 비디오를 가지고 와서 내밀며 "토토오" (아직 '로' 발음이 정확지 않음) 하고 건네주었다. 그래서 "랄라야, 토토로 보고 싶어?" 하고 물었더니 "예쓰!"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 랄라는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엄마! 아빠!"를 힘차게 부르며 일어난 다음 거실로 직행한다. 그리고는 지난밤 소파에 앉혀놓았던 토토로 인형을 찾아와서 꼭 안아주면서 나를 보고 "엄마, 토토오" 하며 씨~익 웃는다. 그래서 요즘 랄라의 사랑은 블루도 아니고, 부바도 아니고, 도라도 아닌, 토토로의 독차지다.

<이웃집 토토로>는 일본에 있을 때부터 특히 아끼던 작품이었다. 지금 랄라가 보고 있는 비디오는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인터넷으로 토토로 바탕화면을 검색하다가 <이웃집 토토로>가 영어판 비디오로 시판되었다는 기사를 읽고 구입한 것이다. 내가 토토로를 알게 된 지는 이미 15년이 흘렀고, 지금은 나의 아기가 '토토오'와 사랑에 빠졌다. 토토로가 만약 영화배우였더라면 1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외모나 인상이 변했겠지만, 내 기억 속의 토토로는 15년 후인 지금도 변함없이 다정한 눈빛을 하고, 그의 마음만큼 커다란 몸을 작은 가랑잎 하나에 의지한 채 빗속에 서있다. 더군다나 메이짱을 쏙 빼닮은 랄라와 함께 토토로를 만나러 가는 아침은 한층 더 행복한 기분이다.

작가의 이전글 할머니 93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