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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sonata Oct 28. 2023

49

Happy Birthday!

2023년 10월 27일 금요일


며칠 전 40대의 마지막 생일을 맞이했다. 9년 전 맞이한 40세의 생일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그날 서점에서 밤색 가죽 커버에 쌓인 두툼한 노트 한 권을 구입했다. 그때 산 노트의 속지에는 "40세 생일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적혀있다. 나는 이 노트를 6년에 걸쳐 사용했고, 첫 장은 논어 12편 <안연>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장은 사기 63권(3) <노자한비열전>의 한 구절로 끝난다. 내가 마흔이 되던 해에 친구들은 젊음의 상실을 애도했다. 그런데 나는 40세 생일이 설레고 기뻤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나에게 노파의 영혼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나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오랫동안 떠나왔던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기분도 든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홀가분하고 평온하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49'라는 숫자를 제목으로 붙이고 나니, 사십구재(四十九齋)가 떠오른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49재를 치르기 위해 7일째 마다 법당에서 정성껏 재를 올렸던 기억도 떠오른다. 우리는 할머니의 명복을 빌며 매주 공양을 바치고 예불을 드리고 <반야심경> <천수경> <영가전에>를 독송했다. 늦봄에 올린 초재로부터 한 여름에 마친 막재까지 어떤 폭염과 폭우에도 우리는 상복을 입고 같은 자리를 지켰다. 그것이 할머니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것이라고 믿었고, 불교 신자로 살아오신 할머니께 해드릴 수 있는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칠칠재(七七齋)로도 불리는 이 규칙적인 의식은 오히려 유족에게 더 큰 위안이 되었다. 그 후부터 49라는 숫자는 나에게 위로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올해 생일은 랄라 대학교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면서 '가족 생일 축하' 주말을 보냈다. 우리 가족의 생일은 나 - 랄라 - 스톰의 순서대로 모두 가을에 있다. 랄라가 우리와 함께 지낼 때에는 물론 생일마다 미역국도 먹고 서로의 생일을 축하해 줬지만, 랄라가 대학생이 되고 집을 떠난 후부터는 가을 어느 날 한 자리에 모여 세명의 생일을 축하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새로운 가족 행사가 제법 기다려진다. 이 기간에는 각자가 정한 식당에서 특별 메뉴를 맛볼 수 있고, 숙소 근처에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나들이를 할 수도 있다. 헤어지기 전에는 셋이 마주 보고 앉아서 디저트에 촛불을 켜고 축하 노래를 부르며 가족 모임을 마무리한다.  


지난 주말의 가을 하늘은 맑고 드높았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수다 삼매에 빠졌고, 소식통인 랄라 덕분에 다채로운 식당과 카페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운치 있는 고서점에서 책 구경을 마음껏 했고, 아름다운 야경도 감상할 수 있었다. 아침에는 커피를 들고 스톰과 단 둘이서 캠퍼스를 산책했다. 주말이어서 교정은 조용하고 한가했다. 우리는 햇살 좋은 벤치에 앉아 지나온 날들과 앞으로 함께 늙어갈 날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제는 책임감에 억눌린 삶이 아니라 살아가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하루하루를 살자고 다짐했다. 무엇보다 랄라가 건강하고 밝게 자라줘서 행복하다며 스톰과 나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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