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20시가 넘은 시간, 무엇을 먹기에는 위에게 미안한 시간, 냉장고를 연다. 냉장고에는 떠먹는 요거트가 하나 남아 있다. 그것을 깨끗이 비운다.
떠먹는 요거트가 무슨 대수랴. 그 요거트에서 어릴 적 “꼬모”를 생각한다. 약 30년 전에는 떠먹는 요거트가 귀한 간식이었는데, 어렴풋이 생각나는 건 요플레 보다 조금 저렴했던 몇몇 요거트 중 꼬모라는 요거트였다. 당시 약 300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어릴 적 부모님께 들었던 이야기. 버스를 타지 않고 10리(약 4 km)도 훨씬 더 넘는 초등학교를 통학했다거나, 방안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산에서 나무를 했다거나 등등의 이야기들이, 이젠 내가 나의 자녀에게 하는말이 되어 버렸다.
어릴 적에는 모든 것이 귀했고, 초등학교 때 과학경시대회를 나가기 위해 카시오 휴대용 계산기를 사고 좋아했던 적도 있다. 이젠 계산기는 휴대폰 안에 다 들어 있고, 요거트 정도야 편의점에서 먹고 싶을 때 사 먹을 수 있으니, 이젠 무엇이 달라져야 했다고 말할까.
친구에게 힘들게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하거나, 애타게 기다리던 시간도, 공중전화를 서성이다 몇 십원 남은 공중전화를 보면, 왠지 들어가서 누구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 했던 시절이 있다. 그러한 시절은 이제 느낄 수 없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경험이 있어 모든 물건과 각자의 사람에 대한 가치는 모두가 다르다. 그래서 그 가치의 중요성과 우선순위가 충돌한다. 누구에게는 중요한 것이 누구에게는 중요하지 않고, 어느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어느 사람에게는 말 한 조각, 행동 하나까지도 중요한 것이 된다.
그러한 말과 행동의 보편성과 고유성의 사이에 나와 타인이 존재한다. 그 행동양식과 각자의 패스코드의 일치여부가 아마도 삶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사회성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의 패스워드가 어쩌면 타인에게는 맞지 않는 것일지도. 그것은 나만의 패스워드이니까.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이르는 길은 갈라져 있다. 그리고 저 멀리 뻗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