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의사 하다가 개원한다고 소문이 나면
이 바닥의 여러 사장님들과 영업 사원분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다.
그중에는 물론 기공소 소장님들도 있다.
우선은 월급 의사로 다니던 치과와 거래하던 기공소가 괜찮다고 생각을 했기에 그대로 이어서 거래를 하기로 했다.
보통 한 치과에서 기공소는 2곳 이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서로 견제시키기 위해서?
잡아 놓은 물고기에는 밥을 안 주듯이 하나의 기공소에 기공물을 몰아주면 조만간 기공의 질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모든 기공물을 하나의 기공소로 몰아주면 그만큼 소장님이 내 치과를 VIP 고객으로 인지하여 다른 것들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나도 우선은 2곳의 기공소와 거래를 시작했다.
기공소와는 따로 계약서 같은 것을 쓰지 않고 상호 간에 기공료 협의만 하고 거래가 시작된다.
기공물을 보내기로 한다면 기공소 소장님이 한번 더 치과를 방문하여 기공지시서를 놓고 가며 기공물 수거 및 배달 시간을 서로 맞춘다.
보통 출근 시간인 오전 8~9시경에 한번, 점심시간인 오후 1시 30분~2시경에 한번 치과를 방문하여 인상체*들을 수거하고 보철물*들을 배달한다.
* 인상체: 치과에서 환자분들 본뜬 것
* 보철물: 기공소에서 기공 완료한 인레이, 크라운 등
치과의사도 사람에 따라 실력이 천차만별이듯이 기공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어떨 때는 이딴 것을 환자 입에 넣으라고 만든 건가 싶은 기공물이 배달되어 오지만,
또 어떤 기공물은 모든 것이 딱딱 잘 맞아서 진료실에서 따로 손 볼 필요가 없는 경우도 많다.
치과의사가 좋은 기공사 파트너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처음에 거래했던 기공소 A와 B 중, B는 규모가 커서인지 기공소장님이 직접 나를 만나러 오지 않고 기공소의 영업부장이라는 사람이 치과를 방문했다. 거래할수록 나를 잔챙이(?)로 여기는 느낌이 많이 들어서 결국 거래를 끊었다. 거래를 끊는다는 것은 별게 아니라 그냥 기공물을 더 이상 보내지 않는 것이다. 내가 역시 잔챙이였던지 B 기공소에서는 기공을 보내지 않아도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거래 종료.
B 기공소에서 하던 기공 중에서 A 기공소에서는 안 하는 항목이 있어서 새로운 기공소를 물색해야 했다.
개원을 하면 주변 기공소 소장님들도 거래를 터 주십사 하고 치과를 방문하는데 그중에서 유일하게 화분을 사 왔던 C 기공소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어보았다. 다행히 내가 물색하던 해당 기공을 한다고 해서 거래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C 기공소에는 특정 기공만 맡기고 나머지는 모두 A 기공소로 보냈는데, 어느 날 C 기공소장님이 새로운 장비 도입으로 기공료를 인하해 준다며 홍보를 해왔다.
(요즘 치과의원 못지않게 기공소들도 치열한 경쟁으로 정말 힘들다.)
그때쯤 우연찮게 A 기공소의 기공물이 잘 맞지 않아 짜증도 난 김에 대부분의 기공물을 이제 C 기공소로 보내고 A 기공소에는 금속류 기공만 보냈다.
그러자 A 기공소 소장님이 찾아와서 요즘 왜 금속류 기공만 보내는지 문의를 해왔다. 나는 A 기공소 소장님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있는 그대로를 설명했다.
A 기공소 소장님은 내 말을 듣더니 본인도 솔직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즉, 금속류 기공은 본인들이 남는 것이 없고 다른 기공을 보내줬을 때 서비스 개념으로 해드리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죄송하지만 금속류 기공만 보낸다면 더 이상 기공을 받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렇게 A 기공소와도 거래가 종료되었다.
이제 C 기공소에 모든 기공을 몰아주는 상황이 되었다. 조금씩 기공이 안 맞기 시작했다. 특히 여러 개 임플란트를 묶은 경우가 특히 잘 안 맞아서 다른 기공소를 또 물색해 보았다.
그때쯤 임상 실력 향상을 위해 프렙* 세미나를 들었는데 해당 세미나를 하는 원장님과 거래하는 D 기공소 소장님이 어떻게 알고 치과를 찾아왔다. 아마 그 세미나 하는 원장님이 개인 정보를 넘겼던 것 같다.
* 프렙: 크라운 할 치아를 깎는 진료 행위
D 기공소 소장님은 자기가 심미보철을 잘한다면서 홍보를 했다.
기공료는 C 기공소의 두 배 이상.
마침 여러 개 임플란트인 데다가 앞니 임플란트 케이스가 있어서 한번 보내보았다.
기공물이 나쁘지 않았으나 기공료 대비해서는 만족도가 낮았다. 그래도 라미네이트 케이스는 어떻게 해오나 궁금해서 케이스를 보내봤는데 D 기공소 소장님이 다른 기공물은 안 보내줘서 삐진 듯했다.
내가 여자 원장님이라 만만했는지, 기공사가 치과의사 원장님한테 하지 않는 말투로 내 심기를 긁어댔다.
내 입장에서는 C 기공소 대비 퀄리티 차이가 크지 않은데 2배 이상 비싼 D 기공소로 갑자기 기공을 몰아줄 일이 없었다.
본인이 기공을 잘하는 것 같은데 원장님이 기공물을 안 주면 왜 그런지 원인 분석을 좀 해보면 좋을 텐데 아쉬웠다.
차라리 심미 케이스만 보내주면 (내가 소인배라서) 기공을 못 받겠다고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하던지 또 그 말할 용기는 없었는지 꼭 싸가지 없는 여자애들이나 하는 짓거리를 해댔다.
나보다 나이도 많은 아저씨였는데...
그 아저씨가 운이 없는 사람인지, 기공물에 문제가 생기고 심지어 기공물이 사라지고! (응?) 이런 일이 생겨서 나도 짜증이 났는데 지가 먼저 짜증을 내면서 우리 막내 직원한테
"꼴랑 라미네이트 하나 보내면서 왜 이리 문제가 많냐며 자기가 기공 못하겠으니까 알아서 하라"고 했단다.
그 말을 전해 듣고 저게 사회생활 가능한 인간의 반응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다시 전화를 걸어 기공을 받아가 놓고 이제 와서 기공을 못하겠다고 말한 게 맞냐고 물어봤다.
우물쭈물하며 딱히 부정도 사과도 안 하길래 그냥 알았다고 하고 통화를 짧게 끝냈다.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나서 한판 쏟아낼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내 기분만 나빠지고 달라질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관두었다.
무엇보다 라미네이트 환자분의 기공을 완성해야 했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C 기공소 소장님께 부탁을 해서 해당 라미네이트 기공을 무사히 완성하였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기공 소장님들은 능력과 예의가 있었지만 '또라이 일정 비율의 법칙'대로 가끔씩 D 기공소장처럼 덜 떨어진 모지리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