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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오 Jan 15. 2022

경찰 불렀다.

퇴거불응죄가 있답니다.

오늘 어떤 보호자가 나에게 따지고 욕을 해서 경찰을 불렀다.

'이렇게 적고 보니까 별일이 아니었구나.'

방금까지 엄청 화가 났는데 글 한 줄 쓰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개원을 하면서, 아니 치과 일을 시작하면서 언젠가 경찰 부를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내 입장이 있고, 물론 환자분의 입장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서로 달라 갈등이 생기고 감정도 상하지만 그럼에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 책임으로 돌리고 해결해라 보상해라는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가만히 있기는 힘들다.


그 환아(소아환자)는 유치가 일찍 빠져 그 자리에 공간 유지장치를 하기로 했고 지난 내원 때 장치 제작을 위해 본을 뜨고 간 상태였다. 그리고 장치를 붙이는 날에 예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래 기다리게 되었다. 거기다가 장치까지 잘 맞지 않아 환아가 진료 중에 짜증을 내고 낑낑대며 힘들어했다. 같이 온 보호자(어머니)는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장치를 끼우기로 한 치아의 은니에 구멍이 나 있다는 것을 그날 발견했다. 이것은 은니와 장치를 합쳐서 새로 제작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하...'


마음속에서 깊은 한숨이 나왔다. 일이 안 되려고 하니 이렇구나. 이제 장치를 새로 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나를 얼마나 원망하실까...


"지금 보니까 은니에 구멍이 있어서 장치를 새로 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은니까지 새로 들어가는 거라서 추가 비용이 있을 거예요. 혹시 장치를 그냥 끼우기를 원하시면 오늘 끼워드릴게요."
"저번에는 그런 말씀 없었잖아요. 원장님이 장치 맞추다가 방금 구멍 내신 거 아니에요?"


기분이 나빴다.

환아와 보호자가 오늘 오래 기다렸고 장치가 한 번에 맞지 않아 서로 낑낑대며 고생했다는 이유로 보호자는 나에게 아무 말이나 던지고 있었다. 결국 그 보호자는 장치를 끼우지 않고 생각해 보겠다고 하며 나갔다. 그리고는 다음날 환불하겠다며 전화가 왔다. 우리는 기공물이 이미 나온 상태고 원하시면 끼워 리는 것이고 은니까지 다시 하신다면 추가 비용을 내고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해 드렸다. 환불을 정 원하신다면 지불해 주신 금액의 40% 정도만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 환아의 아버지가 갑자기 치과에 방문하며 사단이 벌어졌다. 등장 때부터 양손을 허리에 얹고 '이놈의 원장 어딨어?' 하는 태도로 나를 찾았다. 보호자를 우선 진정시키고 상담실로 안내했다. 예정에 없던 시간을 내어 나도 상담실로 가서 보호자와 상담을 시작했다. 많은 이야기를 들어드렸지만 결론은 100% 환불과 환아에게 '정식으로' 사과하라는 것이었다.

참나... 내가 그날 사과를 안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그날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하다. 애기가 힘들어하고 낑낑대어서 '힘들지? 미안해~ 이게 한 번에 안 맞네~' 이러면서 짜증 내는 애기 달래 가며 맞추느라 나도 힘들었다.

그런데 무슨 대역죄인 취급하며 환아에게 다시 사과하고 100% 환불해 달라니 화가 났지만 진정하고 설명을 계속했다. 보호자는 여전히 고압적인 자세를 풀지 않았다.


"네가 그렇게 잘났어?"


결국 보호자는 자기 뜻대로 일이 안 풀리는지 반말을 했다. 30분을 그렇게 전후 상황 말씀드리고 속상한 마음을 달래 드리느라 애쓴 보람도 없이 반말이 날아오자 나도 화가 났다. 그래서 나도 반말했다.


"반말했지? 더 이상 얘기 안 할거니까 나가."

"야이 씨발!"

"욕했지? 경찰 불러요."


보통 반말 -> 욕 -> 폭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흐름을 끊기 위해 경찰을 불렀다. 몇 분 후 경찰이 왔다. 경찰을 부르니 보호자는 당황했지만 곧 예상대로 경찰에게 '저 사람 나쁜 원장이에요' 이런 식으로 일러바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환아와 엄마가 치과로 들어왔다. 나는 경찰에게 저 사람 데리고 나가 달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막상 환아를 보니 책임감이 느껴졌다.


그날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면,

그날 장치가 한 번에 잘 맞았다면,

장치 끼우는 은니가 멀쩡했다면, 또는 본뜨기 전에 발견했다면,

여기까지 왔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환아는 자기를 치료해준 원장 선생님에게 욕을 하고 경찰에게 변명하고 있는 아빠를 보면서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미안하지만 여기서 마무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환불해주기로 결정했다.

금액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100%이든 40%이든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지만 내 의지대로라면 장치를 끼워주거나 새로 제작해서 치과의사로서 책임을 완수하고 환아와 보호자와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 그러나 모든 환자가 내 환자가 될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엄마 보호자에게 장치 잘 끼워드리고 싶었는데 아쉽고 이렇게 되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부는 같은 것인지 엄마 보호자는 100% 환불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나에게 눈을 흘기며 도대체 경찰을 왜 불렀느냐며 따졌다.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그분의 남편을 모욕 죄과 업무 방해죄로 고소를 할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이런 분들을 겪으며 나도 많이 배운다. 그러나 이런 일들로 인한 감정은 금방 툭툭 털어버려야 한다. 그래야 치과 일을 오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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