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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오 Feb 21. 2022

완벽한 진료

Art + Science = dentistry

학교 다닐 때 교수님께서 치과 진료는 입속에 그 흔적이 남기 때문에 무섭다고 하셨다.

환자가 이 치과 갔다가 저 치과를 가기도 하고 이사를 간다거나 해서 치과를 옮길 수 있기 때문에 치과의사는 환자의 입안에서 예전 치과 진료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이 무섭다.

다른 치과의사의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환자들은 100% '완벽한 진료'와 80% 정도의 '쓸만한 진료'를 구분하지 못한다.

하지만 치과의사 자신은 알 것이다.

이것이 100% 인지 80% 인지.


가끔 진료실에 다른 환자가 없을 때 혼자 남아있는 환자분을 붙들고 100% 완벽한 진료를 하기 위해 애쓰며 진료 시간을 길게 끌 때가 있다.

진료실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장인 정신을 가지고 방망이 깎는 노인의 심정으로 진료를 하는 것이다.

조금씩 완벽함을 더해 스스로 뿌듯할 때까지 하고선, 진료 마무리를 하면 환자 입안에 예술품을 하나 만들고 나오는 것처럼 기분이 좋다.

(단, 환자분은 오래 걸려서 불편했을 수 있음 주의...)


그러나 환자분들은 진료 후 아프지 않으면, 밥만 잘 먹을 수 있다면 (심미치료가 아닌 이상) 만족하시는 것 같다.

부족한 나의 진료에도 어떤 환자분은 그의 면역력으로 병소가 싹 낫는 경우가 있고,

치과의사 할아버지가 와도 더 이상 잘할 수 없는 진료에도 어떤 환자분은 계속 불편해하신다.

통증이란 것이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에 치과의사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도 많이 있다.

나 역시 치과의사이지만 감히 인체의 신비로움 앞에서는 어느 것도 장담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참으로 알 수 없기에, 나는 그저 겸손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진료할 뿐이다.


어떤 날 환자분 입안에서 아주 무식하게 생긴 보철물을 보았다.

'이건 뭐 마진도 안 맞고 생긴 것은 깍두기 같이 생겼네.'

속으로 보철물이 너무 심하다 생각하며 환자분께 보철을 언제 하신 건지 물었다.

"오래되었어요. 한 20년 정도."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그 보철물이 완벽해 보였다. 요즘 어떤 것이 20년을 버틸 수 있을까?

핸드폰? 컴퓨터? 자동차?

하루에도 몇 번이나 씹히고(한국인들 얼마나 세게 씹는지요.) 0도씨에 가까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100도씨에 가까운 뜨끈한 국물을 견디며 입안의 침과 세균에 버티고 있는 이 보철물이 경이롭다.

20년 전 이 보철을 진료하신 선배님께 박수를...


내 손을 떠나 환자분 입으로 들어가는 보철물을 보며 부디 오랫동안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내 보철물 중에도 20년을 버티는 놈이 있을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한자리에서 꾸준히 진료하며 나 역시 20년 이상을 버텨야 할 것이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며 나 자신에게도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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