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지 않는 사람.

졸업사진 속 낯선 얼굴

by taesu

조용하고 얌전하고 참하고.


할머니가 남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하는 칭찬들이었다.


누울 자리 보고 다릴 뻗는다고, 잘 웃고 잘 우는 언니와 사고뭉치 남동생.


그 사이에서 나까지 보탤 자리는 없었다.


언니는 항상 요란했다. 할머니가 떄려도 요란하게 울었고,

아빠가 나를 무릎에 앉히기라도 하는 날에도 요란하게 울었다.


할머니는 언니가 잘 울고 조심성이 없다며 덩더꾸이(말괄량이)라고 하면서도

잘 울고 잘 웃고, 혼나도 할머니 팔에 안겨 자는 언니를 애틋하게 여겼다.


남동생은 시도 때도 없이 다쳤다.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슈퍼맨 놀이를 한다며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다 혓바닥이 찢어지고,

방바닥에 있던 맥주컵을 못 보고 뛰다가 발이 껴서 베이고,

무릎에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넘어져 까졌다.

젖 뗀 지 얼마 안 되어 엄마가 없어져서 그런가 시도 때도 없이 다쳤다.


동생을 소개하는 말은 내가 절에 가서 불공드려 낳은 손주였다.

그만큼 귀한 손주가 잘 다치기까지 하니 할머니는 애가 닳았다.


그 사이에서 나는 그저 조용히 사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하루아침에 이혼한 아들과 사라진 며느리, 갑자기 기르게 된 손주 셋.

무서운 할머니지만 나까지 울면 할머니가 사라질까 봐 무서웠다.


엄마 없는 티가 나지 않는 아이,

착한 아이, 어른스러운 아이.

말썽 부리지 않는 아이.

눈에 띄지 않는 아이.


그렇게 나는 졸업앨범 속에서 아무리 봐도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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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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