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홍난파 작곡, 고향의 봄 중에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던 20대에는
카메라 하나 들고 전국 방방곡곡 안 다녀본 데가 없었다.
개나리도 좋고 벚꽃도 좋지만 만개한 복숭아 꽃밭에 들어가면
아름답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했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조금만 지나면 이 꽃들이 다 복숭아가 되겠지 하며
속으로 입맛을 다시는 걸 일행들은 몰랐겠지?
모든 과일을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복숭아인데
어린 시절 복숭아 넥타가 먹고 싶어 내가 아프지 않은 날엔
아픈 사람이 생겨 병문안이라도 가고 싶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시절 병문안엔 복숭아 넥타가 인기가 많았다.)
아이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평소처럼 신비 복숭아를 평소처럼 6박스나 시켰더랬다.
낮잠을 재우고 복숭아를 먹을 생각에 신이 났는데
오전에 앉은자리에서 복숭아 열 개를 먹는 나를 본 산후도우미 이모가
모유 수유 중에 복숭아를 너무 많이 먹으면 아기가 설사를 한다며 말렸다.
미역국 그만 먹고 복숭아 먹을 생각에 신나 있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지금이야 설사 몇 번 하는 거 뭐 대수랍니까 하겠지만
아기 트림 소리만 달라져도 심장이 철렁하던 때였다.
하루에 한 박스도 먹어치울 수 있지만 모유 수유 때문에
하루 10개만 먹기로 했고 물러져가는 복숭아를 보며
눈물을 (아니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산후 도우미 이모님은 내가 너무 애달아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복숭아가 더 물러지기 전에 골라내 복숭아 청을 담가주셨다.
이후 요리하며 복숭아 청을 쓸 때마다 다정했던 이모님을 떠올렸다.
항상 아이 생일 때 즈음엔 단골 과수원에서 예약 문자가 오고
6월 하순이면 주문한 복숭아가 온다.
나는 매년 복숭아를 보며 아이에게 엄마가 복숭아 진짜 먹고 싶었는데
네가 설사할까 봐 복숭아 못 먹었단 이야길 해주는데
9살이 된 딸아이는 이제 복숭아 박스만 봐도
“엄마, 엄마 이제 복숭아 많이 먹어-” 한다.
그렇게 말해주는 딸아이의 태몽도 수박만 한 복숭아를 먹는 꿈이었다는 건 안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