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사냥하는 밤

by 이비


생각은 너무나 재빨라서 붙잡는 것이 어렵다. 정해진 장소도 없이 불쑥 나타나고, 서로의 꼬리를 무는 뱀처럼 의미 없이 빙빙 돌기도 하며, 풀잎의 작은 흔들림이나 바람의 뒷모습만을 남긴 채 희미해진다. 나는 생각을 사냥하기 위해 무장한다. 찾아오면 언제든 포박할 수 있도록 몇 시간이고 기다린다. 흰 바탕과 찾아올 듯 말 듯한 생각처럼 깜빡이는 검은 커서를 바라보며.


그러나 생각은 생각보다 더 약삭빠르다.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을 생각하는 순간, 자취도 없이 숨어버리는 것이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새벽 다섯 시. 불면이 슬슬 물러날 때쯤, 약효가 슬슬 나타날 때쯤, 그렇게 지쳐 모든 장비를 내려놓고 편히 쉬려 할 때쯤, 생각은 다시 나타난다. 걷고, 뛰고, 구르고, 춤추며 머릿속을 온통 헤집는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생각과의 치열한 추격전. 가끔은 천천히 왔던 길을 되짚어가는 것이 생각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된다. 조용히 눈을 감고 나만 들을 수 있을만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십, 구, 팔, 칠, 육, 오, 사, 삼, 이, 일! 다 숨었니? 주위를 둘러본다. 생각은 머리카락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숨가쁘게 뛰어보아도 어디에 숨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때, 생각이 나타나 손에 쥔 우울로 머리를 때리고 도망간다. 늪처럼 녹아내리는 세계. 발밑이 푹푹 꺼져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 이제 이곳은 우울의 공간이다.


우울이 생각을 좀먹는다. 야금야금 사라지는 생각들이 선명하지 않아 흐린 길을 걷는다. 안개가 베일처럼 몸을 감싸고, 물과 흙이 뒤섞여 만들어진 진흙이 발목을 붙잡는다. 모든 것이 살아 있는 것처럼 의지를 가지고 움직인다. 살아있다는 것은 의지를 가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이미 죽은 건지도 모른다. 천천히 가라앉는다. 의지의 의지는 의지를 가지고 의지하는 바를 이루려 합니다. 이 문장에 ‘의지’라는 단어가 몇 번 들어갔는지 세어보며 한 문장 안에 같은 단어를 더 많이 반복해서 넣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한다. 생각? 문득 생각이 달아나버렸다는 생각에 미친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뒤를 쫓지만, “시간이 없어”를 연신 외치며 뛰어가는 하얀 시계 토끼처럼 생각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남겨진 나는 앨리스가 되어 이곳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는다.


간혹 생각 사냥에 성공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자랑스럽게 잡아온 생각을 들어 올리고 요리법을 궁리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레시피를 사용해볼까. 너무 어려운 건 기각. 실패하면 안 되니까. 너무 쉬운 것도 기각. 힘들게 잡은 생각이니까. 너무 많은 생각을 거친 생각은 결국 창고에 보관되어 썩어가고, 나는 썩은 생각에 흥미를 잃는다. 부식된 생각의 냄새로 가득한 창고. 언제부터 쌓여왔는지도 모를. 손쉽게 잡은 상투적인 생각으로 요리를 할 때면 깊게 고민하지 않는다. 간단하고, 맛있고, 누구나 좋아할 무언가. 사람들이 맛있다고 해줄 때면, 나는 기분 좋게 요리를 대접한다. 어쩌면 꽤 괜찮은 요리사일지도 몰라.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어.


그러던 어느 날, 요리 비평가가 찾아왔다. 생각 레스토랑에서 일할 수 있을지를 알아보기 위해. 겁이 났다. 어려운 길을 피해 쉬운 길로만 다녔기 때문에. 의지를 시험할 기회조차 없도록.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들키지 않도록. 겪을 수 있는 모든 실망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선택으로 인해 완벽히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다른 건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다. 간절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건 아니다. 하고 싶지 않았다. 간절해질까 봐. 결국 글은 나를 봐주지 않고, 글에게 구애하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로 남을까 봐.


부러 쉬운 생각 요리를 내주었다. 비평가가 말했다. 쉬운 생각 요리네요. 아주 쉽고, 누구나 할 수 있죠. 안타깝게도 귀하는 우리 생각 레스토랑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엄습하는 실망. 마치 어떤 기대라도 한 것처럼. 하루 종일 돌아다닌 날 밥을 먹다가 이게 첫 끼니이고 사실 나는 배가 고팠다는 걸 불현듯 깨닫게 되는 순간처럼. 그러나 이내 생각한다. 괜찮아, 쉬운 요리였는걸. 당연한 거야. 진짜 쓰고 싶은 건 이게 아니었는걸. 문득 나 자신을 비웃고 싶어 졌다. 합리화조차 하지 못할까 쉬운 요리를 보낸 영악함을.


의자에 앉는다. 생각은 재빠르고, 붙잡기 어렵고, 창고에서 썩어간다. 역한 냄새가 난다. 절실하지 않은, 아니, 절실하지 못한 자의 게으른 냄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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