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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Aug 16. 2021

지하철 위의 재판


기차를 탈 때에는 글자를 여러 번 확인한다.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어디로 향하는지, 어디에 도착하는지. 자주 놓치거나 지나치는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정말은 내가 보는 것이 사실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찾아온 상상에 매료되어 지나치게 맹신하기 때문이다. 사실만을 알려줄 것처럼 푸른 간판과 노란 선 위에 딱딱하게 정렬한 글자. 언제든 그 글자들은 달아날 수 있다. 모든 것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탓에 도리어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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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특히나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의 지하철은 재판이 열리는 장소이다. 누군가와 헤어지고 집에 가는 길이면, 목소리들은 나에게 오늘의 실수를 구체적으로 속삭여주었다. 너는 이런 말을 했어. 그 사람은 이런 표정을 지었지. 그때에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겠지만, 너는 실수를 한 거야. 엄청난 실수를 한 거야. 만남부터 이별까지의 과정이 새로운 방식, 새로운 가능성으로 재해석되며 반복해 상영된다. 4시 32분쯤 했던 그 발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목소리는 소리를 내주세요. 아아아아아. 반대 의견 있나요? 네, 저는 실수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 이유를 조금 다르게 추측합니다. 발언하세요.


그럴 때면 나는 죄인이 된다. 존재 자체만으로 누군가에게 미안해지는. 공포에 질려 이성적 사고가 불가능해지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느낀다. 모두가 나를 미워하는 것만 같아 다시 한번 피고석에 앉아 죄인이 된다. 나는 뭐가 잘못되었길래 이렇게 꼬였을까. 미안해. 미안해. 나라서 미안해.


언제나 관념 속에 살았다. 나와 세계 사이의 뚫을 수 없는 막을 느끼며. 투명해서 저 너머를 바라볼 수는 있지만 절대 건너갈 수 없는 벽에 기대어, 일상에 닿을 수 없는 관념 속에 살았다. 현실에 속하는 것들은 관념의 형태로 존재할 뿐, 내가 보는 것은 내 세계의 거울이 비추어낸 허상이자 오로지 내게만 적용되는 진리였다. 바다와 하늘을 온전히 보고 만질 수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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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통화를 했다. 너는 말했다. "나 오늘 서브웨이에서 에그 마요 처음 먹어봤어." 그렇구나. "나 원래 매운 거랑 신 것만 먹거든. 그런데 소스 때문에 야채랑 내용물이 흘러내리는 거야. 그래서 오늘은 안 흘러내리는 것들로만 먹었어." 정말? 어땠는데? "생각보다 맛있더라. 너는 서브웨이에서 뭐 먹어?" 글쎄, 나는 서브웨이를 잘 안 먹어.


생각보다 맛있더라.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말이 어떠한 상징성을 띤 것처럼 꿈틀거리며 생명력을 얻는다. 추구하고 믿는 것들이 모조리 흘러내릴 때가 있다. 현실을 살아가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이 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사실은 이미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약을 먹기 시작했다. 약을 먹기 시작한 이후로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살랑거리는 베일이 흔들리면 보일 듯 말 듯한, 그런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불만을 토로하며 구시렁댄다. 지하철 위의 재판이 열리는 횟수도 많이 줄었다. 이제는 간헐적으로 몇 가지 단어나 문장이 떠오를 뿐, 세세한 대화의 순서와 표정이 떠오르지 않는다. 목소리들은 약에 밀려 움츠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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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나지 않는다. 매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모든 것을 검열하던 여자에게 그것은 재앙이었다. 기억이 나지 않으니 모든 것이 편했다. 자신을 탓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생각보다 더 편한 일이었다. 어쩐지 편함이 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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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움츠러들며 조용해지자 나는 조금 심심해졌다. 머릿속에 갇혀 현실의 무엇에도 닿지 못했다. 이제 약은 내 안에 침투하여 벽을 녹인다. 벽이 흘러내린다. 결국 나는 일상의 조각을 만진다. 이제껏 겪지 못한 세계를 엿본 느낌. 다들 이런 세상을 사는 걸까. 아니면 이것 또한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의 일부일까. 약이 내게서 목소리를 빼앗는다. 조용하고, 단순하고, 평화롭다.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불편하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소란의 부재에 누군가의 상처가 자리할까 봐.


끝까지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로 인해 병들고 뒤틀리더라도 다정함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약에 취해 고요함과 안온함을 얻는 건 과연 정말로 나를 위한 걸까. 나는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하기 위해 온갖 언어를 동원한다. 아무런 대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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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탈 때에는 글자를 여러 번 확인한다.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어디로 향하는지, 어디에 도착하는지. 자주 놓치거나 지나치는 것도 한 가지 이유지만, 정말은 내가 보는 것이 사실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찾아온 상상에 매료되어 지나치게 맹신하기 때문이다. 사실만을 알려줄 것처럼 푸른 간판과 노란 선 위에 딱딱하게 정렬한 글자. 언제든 그 글자들은 달아날 수 있다. 언제든 글자들은 달아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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