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은 실제보다 무겁고, 어떤 말은 실제보다 가볍다. 그게 두려워 입을 다문다. 말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이것은 말이나 언어가 아닌 그저 기분. 기분의 일부. 감정의 침전물. 하나가 다른 하나를 부정하고 다른 하나가 다시 그것을 부정하며 이루어지는 배신의 역사. 그리고 모든 것을 배제한 표면의 것들. 모든 행동은 내면의 폭로이며, 지금부터 쓰는 것은 일종의 행동이다.
- 밥은 남기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다. 그게 자연과 사람을 위하는 방법이라고. 그게 예의라고.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나는 오래오래 씹었다. 밥알이 가진 형태가 무너지며 물이 될 때까지, 고슬고슬한 질감이 진득한 단맛이 되기까지. 소화하는 데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바깥 세계에 속해있던 무언가가 입을 통해 식도를 타고 내려와 위에 담긴다. 소화액이 나와 그것들을 천천히 녹인다. 언제쯤이면 내 세계에 속하게 될까. 아니, 어쩌면 내 세계를 무너뜨린 후 유유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배가 부르다. 목까지 차오르는 음식물을 애써 삼킨다. 적당한 때 남기는 법과 뱉어내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사람들은 종종 먹을거리를 건넨다. 때로는 즐거운 맛이라서, 때로는 괴로운 맛이라서, 때로는 일상적인 맛이라서. 나는 온 에너지를 쏟아 이야기를 들으며 타인의 언어를 공부한다. 반나절을 소화하는 데 보내고 나면, 나머지 반나절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버틴다. 더 이상 무언가를 담을만한 힘이 없다. 위산이 위벽을 야금야금 씹어댈 때면 약을 삼키고 몸을 웅크린다.
- 페소아가 나에게 말한다. 고립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자신의 모양대로 너를 만들었다. 근처에 단 한 명의 사람이라도 있다면 바로 생각이 느려지기 시작한다. 사르트르가 말한다. 다른 사람과 시선을 맞추는 순간, 네 안에는 그 사람을 중심으로 한 수챗구멍이 생긴다. 너는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타인에게 주체성을 넘길 것인가, 혹은 네가 주체가 되어 타인을 객체로 만들 것인가. 가장 이상적으로 동등한 관계를 맺는 사랑이라는 방법도 있지만, 모든 방법은 언제나 실패한다. 세계와 사람에 대한 너의 사랑도 실패한다.
타인과 어떻게 공존해야 할지 몰라 종종 길을 잃는다. 평생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시야밖에 없고,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타인에게 부담을 지우거나 무언가를 요구하고 싶지 않아, 주체성을 내어주고 기꺼이 객체가 된다. 하지만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서야 하지? 떠오르는 의문을 애써 지운다.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 되기 위해 생각한다. 생각을 전멸시키기 위하여 생각한다. 생각에 잠식당한다. 결국, 남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하는 인간, 생각 없음을 생각하는 인간.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서 방에 틀어박힌다. 나를 지키기 위해.
-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 안에서, 나는 우울과 가장 가까운 단어를 고르고, 배열하고, 조합한 후에 가장 구체적인 방법으로 실패한다.
1. 비 오는 날의 강수량 1450mm, Chet Baker의 <Almost Blue> 7분 34초, 짐 자무쉬 <커피와 담배> 러닝타임 1시간 33분, 왕가위 <중경삼림> 러닝타임 1시간 42분, 레오 까락스 <퐁네프의 연인들> 러닝타임 2시간 6분, 미셸 공드리 <수면의 과학> 러닝타임 1시간 46분.
2. 아마도 너, 그리고 나, 어쩌면 우울함. 니콜라 테슬라, 그는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음향 공명의 전도체로 이해했지. A/C 368 파인애플과 통조림. 전화 바꿔주세요. 여보세요? 생일 축하해. 비에 젖은 지도는 손에 꼭 쥐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일 아침 ‘하늘이 하얗다’고 해줘. 그게 만일 나라면 난 ‘구름은 검다’고 대답할 거야. 그러면 서로 사랑하는지 알 수 있어.
「왜 날 좋아해?」
「너 말곤 다 따분해. 넌 남달라.」
3. 스테판과 스테파니. 스테파니와 스테판. 우리는 너무 다른데, 왜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을까. 이번에야말로 바깥으로 나가야지. 이번에야말로 내 이야기를 토해내야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비유와 은유 말고, 해석의 여지를 주지 않는 직설화법으로. 그러나 돌려 말하지 않는 법은 제정되지 않고, 언어를 통해 이야기하는 건 침묵보다 더한 정적. 하고 싶은 말은 다른 것에 담아 건넨다. 이 노래 알아? 이 영화 본 적 있어? 이 책은 어때?
- 사랑은 나를 파괴로 몰고 가는 갑작스러운 사고이다. 세계와 사람을 사랑하며 나는 철저하게 파괴된다. 점점 알 수 없다. 사랑할 때 나는 어디에 있나요. 어떻게 해야 나로서 존재하며 사랑할 수 있나요. 충분히 따뜻할 수 없음에, 또한 충분히 잔인할 수 없음에 마음이 아리다. 왜 모든 입체적인 것들은 입체적일 수밖에 없는가. 왜 모든 평면적인 것들은 온전히 평면적일 수 없는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차마 사랑할 수 없고, 사랑하길 원하지 않아도 감히 사랑할 수밖에 없다.
위가 아프다. 어떤 것도 할 수 없어, 나는 단어로 옷을 짓고 그것을 입는 일이 힘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