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그리고 내가 사는 두 도시는 자주 정전이 된다. 낮이 없이 불현듯 밤이 찾아온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해가 진 날, 내리는 비를 풍경으로만 지켜보는 날, 너무 많은 언어가 공기를 가르고 유영하던 날, 정전이 찾아온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도 삼십 초면 희미한 글자가 보인다. 어둠은 익숙해지고, 어둠에 익숙해졌다. 암흑의 틈과 틈 사이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짚어가며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시야가 좁아진 만큼 공간이 좁아지고, 어둠이 이불처럼 몸을 감싼다. 흰색의 긴 초에 불을 붙인다. 촛농을 나무 탁자에 떨어뜨리고 그 위에 초를 세워 고정시킨다. 홀린 듯 멍하니 불빛을 바라본다. 하얀 눈물이 뚝뚝 떨어질 때면, 자신을 태워 빛나는 존재의 춤에 사로잡힌다. 모든 걸 내려놓고 춤을 추자. 한 순간만 살 것처럼 몸을 사르자. 오늘의 나는 죽고, 내일의 내가 내일을 살 테니.
모임이 있는 날 갑작스럽게 불이 꺼질 때면, 인터넷 연결 표시가 사라지고 지구 모양의 표시가 뜰 때면, 사람들의 얼굴이 눈앞에서 사라진다.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사라진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는데. 잠시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지만 곧 모든 것을 잊는다. 안전한 어둠 속으로 파고든다. 나를 감출 수 있는 곳으로. 존재하지 않아도 되는 그곳으로. 빛의 부재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잠깐, 어쩌면 영원히. 영원을 쉽게 말하는 것은 인간의 삶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불 꺼진 도시처럼 내 마음에 정전이 찾아올 때가 있다. 아무런 의욕 없이 겨울잠을 자고 싶다. 삶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물속에서 듣는 소리처럼 모든 것이 멀어진다. 잠시 불이 들어오고, 다시 사람들과 연결된다. 얼굴들이 나타나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린다. 그렇다면 빛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갑자기 사라질 때의 혼란을 대비해, 그리고 가능한 조용히 사라지기 위해 상태 메시지를 변경한다. 사라진다면 정전입니다.
진동 소리와 함께 휴대폰 액정에 뜨는 이름. 통화 버튼을 누르자 한 마디 말이 아래로 툭 떨어진다.
사라지지 마세요.
마음이 툭 내려앉는다.
약속할게요.
정전 이어도요.
노력해볼게요.
미안해요. 사실은 거짓말이에요. 내 문제는 노력할 의지가 아닌 의지를 가질 의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언제든 사라질 준비를 한다. 내 뒤에 아무것도 남지 않기를 바란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나로 인해 슬퍼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우개로 지운 듯 깨끗이 지워졌으면 한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러면서도 글을 쓰고 있다는 건 모순일까.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아 언어로 남기려 한다는 건. 하지만 나라는 사람 자체가 모순이다. 인간의 존재가 모순이다. 기억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생각을 붙잡고 싶을 뿐. 느리게 흐르는 글 안에 담고 싶을 뿐.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날이다. 사실은 살아지고 싶은 날이다. 침대만이 나의 영역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시 잠에 든다. 이번에는 깨지 않기를. 잠깐, 어쩌면 영원히.
어
안녕히 주무세요
사라지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