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말리온

by 이비

연결어미 ‘-다가’는 선행 절과 후행 절의 주어가 같아야 한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 몇 년을 앓았다.


어느 집의 누군가는 매일 아침 집을 나선다. 채 말리지 않은 젖은 머리와 구겨진 운동화 뒤축을 모른 척하며. 다녀오겠습니다. 잠이 덜 깨어 멍한 머리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는 도로의 깨진 타일 틈에 걸려 자주 휘청댄다. 세상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사람들을 흔들고, 사람들은 틈 사이로 휩쓸려 들어간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찰나, ‘갑자기’가 일어날 것이다. 방주와 홍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듯, ‘갑자기’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아침에 집을 나선 사람과 저녁에 집에 돌아온 사람은 같은 사람일까요. 여전히 같은 주어를 이름으로 가질까요.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 나는 순간순간 달라지는데, 당연하게도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건 정당한 일일까요. 세상에는 정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데, 아무도,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정해진 규격의 언어로 모든 걸 표현할 수 있을까. 다른 언어가 비문이 되어 삭제된다면. 하나의 정답이란 건 얼마나 효율적인가. 몇 가지 세계가, 연속되어 분리될 수 없는 세계가 겹쳐져 존재함에도, 그것을 완벽하게 분리하여 인식하고 구분한다는 건. 마치 분리된 흰자와 노른자처럼. 잘 부쳐 예쁘게 놓인 지단처럼. 노른자에는 단 한 방울의 흰자도 남지 않았을까? 참 신기한 일이야. 참 신기한 일이야.


나는 조심스레 상아를 매만진다. 손바닥을 댄 채 눈을 감고 형상을 떠올린다. 아름답고 앓음 다운 세계를 상상해야지. 조각칼을 들고 정성껏 조각해야지. 안녕, 갈라테이아. 안녕, 엘리제. 네가 사람이라면 좋을 텐데.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 물리적인 세계를 벗어나 상상 속에 산다. 세상과 연결된 채, 존재하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것. 그렇게 생겨난 여러 가지 세계가 중첩되어 여러 층위의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는 것. 세계의 단면을 볼 수 있다면 오랜 시간 퇴적된 지층이나 바삭한 패스추리쯤 닮았을까.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 병이라더라. 세계와 세계를 완전히 분리해낼 능력이 없어서 그렇대. 어떤 것이 꿈이고 어떤 것이 현실일까. 너는 어느 세계에 속할까. 들려오는 목소리에 무심코 대답하면, 어느 한쪽에서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사람이 되겠지. 미안, 잠시만 모른 척할게. 아니, 조금만 더 아는 사이로 남아줘.


갈라테이아가 나갔다가 엘리제가 들어온다. 비문이라는 판결 아래 세계는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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