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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적 관찰자 시점 Jan 15. 2021

엄마의 취향.

찰떡은 싫어. 

"다빈아, 기정떡 좋아하니? 동해기정떡 주문할까 하는데 우리 다빈이 새해 선물로 한판 주고 싶구낭."

"그게 뭐예요?"


기정떡이란 말을 처음 듣는 나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이내 선배가 보내준 링크에서 입안에 솨아- 퍼지는 군침을 느꼈다. 


"먹어본 적 없으니 사주신다면 감사하게 먹어보겠습니다. 근데 저거 무슨 맛일까요? 술빵맛인가."

"ㅇ ㅇ. 술빵."


생김새가 보아하니 딱 술빵이었다. 

그리곤 선배에게 주소를 알려 주고 이런 저런 이야기가 이어졌다. 


원래 나는 그다지 떡을 찾아 먹지 않는다는 둥, 

하지만 어쩌다 보니 최근 몇 년간 평생 먹을 떡을 한꺼번에 다 먹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등.


몇 가지 사소한 일상적 이야기가 오고 가고. 


"한 판 보내 드리겠어. 이 떡 먹고 올해 기분 좋게 시작혀."


선배의 덕담으로 우리의 대화는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이 기정떡은 잠시 내 머리속에서 잊혀졌더랬다. 


그도 그럴 것이 엄청나게 추웠던 북극한파 덕에 

부산에 살면서 생전 처음으로 경험하는 수도관 동파!


세상에 수도관이 얼어서 물이 안나오다니.

-_- 어찌 이런 일이. 

부산에서 겪으리라곤 상상도 못한 변수에 나는 거의 패닉 상태였다. 


대략 4.5일간 양치질도 생수로 해결하고 

변기 물 내림도 생수로 해결하는 극악의 초절정을 경험했다. 

(샤워까지는 차마 그럴 수 없어서 부모님 댁에서 해결!)


건물주의 이런 저런 시도 끝에 겨우 물이 나오고 진짜 눈물이 날뻔 했다지. 


그 사이 날이 풀리고 한숨 돌리는 와중에 도착한 동해기정떡.

사실 기정떡은 사투리라 한다. 

술떡도 사투리라 한다. 


정식 명칭은 증편 (蒸편/烝편)

여름에 먹는 떡의 하나. 멥쌀가루를, 막걸리를 조금 탄 뜨거운 물로 묽게 반죽하여 더운 방에서 부풀려 밤, 

대추, 잣 따위의 고명을 얹고 틀에 넣어 찐다. 

(네이버 국어사전 발췌)


어쨌거나 도착한 동해기정떡. 

 

내가 주문할 당시 커피기정 어쩌고 했더니 감사하게도 커피기정떡도 같이 넣어주셨다!


의외로 고급스런 패키지에 마음이 동한다. 

부모님께 선물드려도 괜찮을 것 같은 패키지 박스.

내게는 기정떡이라는 이름보단 술떡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하다. 


술떡은 그냥 시장에서 비닐 포장지에 둘둘 싸여 있던 

그런 이미지였는데,

이렇게 고급스런 포장이라니. 


비쥬얼 멋진 커피기정떡

슬쩍 커피술떡 부터 꺼내놓고 보니 어쩐지 

먹기 아까워졌다. 


일단 양많은 하얀 기정부터 먼저 먹어 보기로 했다. 


딸기우유와 함께하는 기정떡

전자렌지에 대략 30초를 돌리고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사르르 퍼지는 이 쫄깃함! 


"와,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


술떡이 이렇게 맛있어서 될 인가.


진짜 둘이 먹다 하나 취해도 모를 맛이네 그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고 달달한 그 맛에 순식간에 접시에 꺼내놓은 

4조각이 사라졌다. 

하, 하, 하, 하. 


이거 울 엄마도 좋아하려나?


내심 드는 생각이 울 엄마도 입맛이 나랑 비슷해서 

떡은 별로 안 좋아했던 거 같은데.


(제주도 갔다가 오메기떡 사왔다고 구박만 들었던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도 술떡은 가끔 드시지 않았나? 


이랬다 저랬다 고민만 하다 

전화기를 손에 들었다. 


고민하면 뭐하나. 물어 보면 그만이지.


띠리리~ 연결음이 귓가를 스치고 이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왜?"

"어, 엄마, 술떡 먹나?"

"어, 먹지. 왜?"


헐. 우리 엄마 입에서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뭐 드신다는 말씀이 나오다니.

이건 분명히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거다. 

전화 안했음 큰일 날뻔했네. 


"아, 선배가 술떡 한 판을 보내줘서, 그럼 내가 지금 들고 내려 갈게."

"어."


내심 반기는 듯한 엄마의 목소리에

당장 내려 가야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충 박스에서 반 덜어 놓고 반 박스 들고 부모님 댁으로 

가져 갔더니 역시나 반기는 기색이 역력하시다. 

기정떡 한판

"걔는 어디서 이런 걸 알았대니?"

"뭐 강릉에 있다는데. 새해 선물이라고 보내줬어. 그나저나 난 엄마가 떡 잘 안 먹는 줄 알았는데."

"찰떡은 안 좋아해. 근데 백설기나 술떡은 잘 먹지."


나는 알 수 없는 엄마만의 차이가 있는 모양이고, 그것도 상당히 좋아하시는  듯 했다. 


식탐 많으신 아버지 혼자 다 드시면 안된다고 슬쩍 숨겨두기까지 하시는 거 보면.


그래서 내심 반성했다. 

지금껏 이때까지 울 엄마 취향 하나 제대로 모르고 살아왔다니. 


다음엔 엄마 혼자 드시라고

한판 주문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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