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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Oct 30. 2020

한글떼기

다섯살 딸아이, 반 년 만에 한글 읽기


1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이가 글자에 관심을 보였다.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한글을 가르쳐도 되겠군!     



사실 그 당시에는 내가 의욕이 없었다. 그래서 한글 쉽게 배우기 등을 검색했는데 죄다 광고. 한달에 얼마. 한글을 배우는데 이렇게 돈을 써야해?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1학년 담임을 네 번이나 했는데. 자음 모음부터 가르친 세월이 몇 년인데. 내가 내 아이를 못가르치면 왠지 좀 쭈굴거리는 느낌일 것 같다. 결심했다. 대충이라도 가르치자. 1년이 걸리든 2년이 걸리든 천천히. 아이는 다섯 살이고, 시간은 많다. 자기 이름 석 자만 쓸 수 있도록 가르치자.      



그렇게 한글여정을 시작했다. 첫 코스는 ‘한글이 야호’ 시청이었다. 1월 한 달 동안 아이는 주구장창 ‘한글이야호’만 보았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쭈루룩 나온다. 받침 없는 편 영상이 있길래 그것만 보여주었다. 텔레비전만 세 시간씩 시청한 적도 있다. 그렇게 영상을 한달정도 같이 봤다. 그러던 어느 날, 영상 끝 무렵에 ‘한글이 야호’ 공식 교재가 있다는 자막을 보았다.     



2월 초, ‘한글이 야호’ 책을 샀다. 받침 없는 단계만 네 권이다. 오메, 이것을 언제 다 하지? 쭈루룩 훑어봤다. 아이가 냉큼 달려왔다. “이게 뭐야? 나 스티커 붙일래!” 그렇게 스티커를 먼저 붙였다. 기역부터 히읗까지, 책 순서 완전 무시하고 스티커부터 몽땅 붙였다. 그리고 한 달 정도 그냥 처박아두고 다시 ‘한글이야호’ 영상을 보았다.      


동시에 코로나가 창궐했다. 본격적으로 집에 있어야 했다. 너무 심심해 다른 활동도 동시다발로 해봤다. 종이접기, 클레이, 그림그리기, 숫자읽기. 작정하고 뭔가를 시작했던 것은 절대 아니다. 관사로 살고 있는 집이 너무 좁기 때문에 놀잇감이 없었다. 거실에는 그림책, 색연필, 종이, 소량의 클레이만 있었다. 이런 활동이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나는 조금 한가해졌고, 아이는 그림그리는 재미에 푹 빠졌다. 숫자도 읽어보더니 재미있어하며 따라 그려보기도 했다.          

       



3월에서 4월이 될 무렵, 그림책을 읽어줬다. 그림책은 처음에는 내가 반복해서 읽어줬다. 그러면 그 글자를 외우는 건지 읽는 건지 모르겠지만 점점 읽었고, 내가 읽는 도중에 “엄마, ‘뱃놀이’ 글자는 어디 있어?” 물어보고 가르쳐 주면 본인이 좋아하는 새로운 글자를 알아내곤 했다. 그림책을 끝까지 읽기보다는 거기에 있는 글자를 찾고, 쉬엄쉬엄 읽어내려갔다. 재미있는 그림책이 너무 많다. 내가 힐링 되고, 내가 그림책을 읽으면 이 세계가 안전하다고 느낀다. 굉장히 즐거운 활동이다.     


백희나 작가님 책은 우리 아이의 최애 동화책이다!!


어느정도 그림책을 읽었다고 생각하면 초성게임을 추천한다. 날이 따뜻할 때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엄청 쉽다. 종이와 색연필 두 개만 있으면 끝이다. 나와 아이 중 한명이 초성을 적는다. 아이가 자주 쓰는 낱말을 초성으로 적어야 맞추기가 쉽고 자신감을 가진다. 그러면 아이가 말로 정답을 맞춰본다. 힌트도 주고, 첫글자도 알려주면서 최대한 맞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


그렇게 자신감이 붙으면 아이가 나에게 문제를 낼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아이가 무척 좋아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낱말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면 책을 보기도 하고, 나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맞고 틀리고에 중점을 두면 아이가 싫어할 가능성이 높다. 그냥 게임으로 즐기고 게임이 끝나면 엄마아빠는 쉬면 된다.     



이렇게 6월을 맞이했다. 받침 없는 글자는 모두 읽게 되었다. 그리고 받침 있는 글자는 나에게 물어물어 읽기도 하고, 초성게임을 하면서 써보기도 했다. 꽃이나 말 같은 문장을 쓰면서는 “이거는 정말 꽃처럼 생긴 글자야!” 라고 말하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그림책을 읽으면서 알아가는 낱말도 많아졌다. 거의 반년 정도만에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시점에 먼지가 앉은 ‘한글이야호2’ 교재를 꺼내주니 그 속에 있는 글씨를 쉽게 따라썼다.     


문장은 언제 쓰기 시작했는지 기억이 안난다. 어느 날 갑자기 쓰기 시작했다. 한글자씩 나에게 물어보더니 짧은 문장도 쓰고, 긴 문장도 써내려 갔다. 자기 이름, 가족 이름, 친구 이름, 사랑해, 좋아해, 꽃 등을 쓰더니 문장을 썼다. 그리고 접속사(그리고, 하지만)를 물어보더니 “친구야 보고싶고 고마워 사랑해.” 같은 문장을 쓴다. 한창 불이 붙었을 때는 하루에 편지 한 통은 기본으로 선물 받았다. 편지를 받는 순간, 나에게 엄청난 힐링의 물결이 파도를 친다.     


초창기 글씨쓸때..


첫 편지..^^



고기를 구워주면 이렇게 편지를 써준다 ㅋㅋ


정리하자면 이렇다. 첫째, 한글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나같은 경우는 한글이야호였다. 둘째, 손으로 연필잡는것과 종이접기등을 동시에 같이 해본다. 셋째, 그림책을 대~충 읽는다. 다 못읽어도 된다. 넷째, 초성게임을 해본다(5월 정도에 시작했던 것 같다). 다섯째, 반복한다.      



나는 꼼꼼한 엄마는 아니다. 매일 자기전에 책을 읽어주지도 못하고, 매일 글쓰기를 지도하지도 못한다. 아이가 손톱이 자랐다고 보여줘야 손톱을 깎아주는 덤벙이 엄마다. 영양만점 간식을 해주거나 체계적으로 교육을 시키는 편이 아니다. 어쩔때는 너무 그냥 뒀나? 싶을 정도로 태블릿도 보여주고, 블록도 한없이 갖고 놀게 한다. 밥먹는 시간, 자는 시간만 지키지 다른 것은 다 내 컨디션에 따라 다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냥 너 하고 싶을 때 천천히 해, 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지켜봐 준 것이 오히려 아이에게는 에너지를 준 것이 아닌가 싶다. 요즘도 초성게임을 가장 좋아해서 한번 시작하면 한시간.. 그래서 내가 잘 시작하지 않는다. 딸래미 미안해~     



지난 9월, 내 생일에 편지를 써주었다. 내가 이걸 꼭 받자고 글을 가르친 것은 아닌데, 이렇게 편지를 받으니 잘 가르쳤구나 싶다!(엄마뿌듯)     


천천히, 아이의 속도에 맞게, 그리고 엄마아빠가 편안한 마음으로 한글 가르치셨으면 좋겠다. 8세때 보통 자음모음을 배우면 늦지 않느냐고 물으시는 분들도 많다. 학교 교육과정은 일반적인 ‘평균’에 의해서 정해진 것이다. 아이들에 따라 전부 다르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아이가 관심을 가질 때, 그때 시작하면 된다. 다른 집 아이들도 가르쳐보고, 내 아이도 가르쳐보니 그것이 답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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