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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Dec 30. 2020

굴욕

옷이 작게 나온 거라고 말해줘 제발


어쩌다 보니 6 학급에서 스트레스를 받아(그렇다고 줄기차게 주장하는 남 씨. 37세. 금주 한 달 차) 빅사이즈가 되어버린 나. 인정한다. 그래도 숨쉬기 운동과 기본적인 유연성과 요가력(??)은 유지하고 있다. 건강에도 이상 없고 그냥 살찐 거라서 병원 갈 일도 없는데 왜 살쪘는데 건강한지는 미스터리였던 와중에 생긴 나의 쇼핑 실패담을 자랑스럽게 공개한다.

어느 날. 나는 문득 생각한다.

이제 곧 이 관사를 벗어나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도배와 몇 차례 난방상태 점검차 방문한 결과. 지금 시골 아파트의 엘피지 난방 화력을 절대 따라갈 수 없다는 결론. 여기 엘피지 화력 엄청나다. 22도로만 해놔도 밤에 꼬마가 내복을 벗어던진다. 어쩌면 온도조절 기능을 상실한 걸 수도. 보일러는 새 거던데. 엘피지는 진짜 최고다. 그러나 가격도 아주 비싸다는 점. 중요.

암튼! 이사 갈 집은 이렇게 반팔 나부랭이로 여유 있게 땀을 흘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거다. 지역난방에 앞에 산이 보이는 고층 뷰. 앞동이라 바람 시원하지. 지금 자랑하는 중이다. 그래서 겨울에도 공기는 괜찮지만 우리 부부가 지향하는 뜨끈한 온돌을 지역난방으로는 택도 없을 것이라는 결론.

그래서 플리스 운동복을 사기로 한다.(갑자기?) 의식의 흐름이 이렇게 논리적인 걸 내가 통제할 수가 없다. 나에게는 따뜻한 원마일 룩이 없다. 사야 한다. 집에서 따스함을 위해 입는 것이므로 오버핏으로 사서 내 똥배는 가려주고 내 좁은 어깨를 부각해 남편이 가끔 내가 살이 빠진 것 같다는 착시효과를 일으키는 효과도 덤으로 노려본다. 물론 남편은 내가 어떤 복장으로 다녀도 안구에 충격을 받은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배둘레헴과 키와 적당한 핏을 고려해서 종종 애용하는 사이트에 또 때마침 잘 나온 플리스 티셔츠와 조거 핏 팬츠를 산다. 세상 힙한 느낌으로 집 앞 슈퍼를 활보할 수 있을 자신감을 주는 옷이 되리라. 엄청 기대하고 기다렸다. 겨울에 교복처럼 입어야지. 이사하는 날 입어야지. 이사 가서도 매일 입어야지. 출근하는 날 빼고 다 입어야지. 나는 행복했다.

택배가 왔다. 블랙 블랙 한 자태가 내 겨울옷이구나 싶다. 플리스 티는 생각보다 조금 후줄근했지만 실내에서는 적당한 두께였다. 조거 핏 팬츠는 엄청 커 보였는데 입어보니까 왜 적당히 맞음? 나 힙합 핏 원했는데 왜 정사이즈로 적당히 맞지? 일단 바지로 받은 충격 잠시 감추고 플리스 티도 입어본다. 모델들은 거의 원피스처럼 똑 떨어지는데 티셔츠 왜 적당하게 잘 맞지? 이 핏 아닌데? 어디 돌아다니기에? 이상하지는 않지만 내 맘에 쏙 들지는 않고 택은 과감히 뜯어버렸고. 중고거래는 원래 안 하고. 그냥 이사 가는 집에서 홈웨어로 입자는 본래 목적에 아주 잘 부합하게 되었다.

여하튼. 유명 운동복 가장 큰 사이즈가 모델 같은 오버핏이 아니어서 매우 서운했다는 이야기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고 옷이 전체적으로 작다기에는 분명히 오버핏으로 소개가 되어있던데! 이 끝나지 않는 기분 상함.

어제 핫핑 어플 삭제했는데 다시 깔려고 했는데 일단 식이조절을 열심히 하고 있으므로 깔지 않기로 한다. 빅사이즈에서 미디엄 사이즈 가즈아! 5년 전 그 미디엄 옷들이 울고 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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