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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Jan 12. 2021

우리 또 만나 #004

쓸모없는 딸년이라는 오명을 벗고싶었다


내가 아이를 출산하고 생후 50일까지 친정에서 머물렀다. 스무 살부터 나가 살다가 재수할 때 1년 들어와 살고, 다시 나가 살았으니 독립한 지 약 15년 만의 잠시 컴백이었다. 한 달 넘게 친정에서 머물렀다. 엄마는 아이 넷을 키우고 산후조리사를 했던 경험을 200% 살려 우리 꼬마를 정말 잘 돌봐주셨다. 목을 가누지 못하는 아이를 목욕을 어찌 시켰고, 어찌 안아줬으며, 그 코딱지만 한 것이 악을 쓰고 우는 것이 아직도 꿈만 같다. 약 3주 전에 여동생이 둘째를 낳았는데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리며 앵앵대는 배고픈 꼬물이가 귀여우면서도, 나는 못 안아줄 것 같다. 벌써 메말라버린 것인가. 아니다 그냥 나는 여섯 살이 된 나의 꼬마에게 길들여진 것일 뿐이다.


문제는 이게 아니다. 우리 엄마는 남에게 원래 싫은 소리를 잘 안 한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 마지노선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나는 우리 엄마의 마지노선을 수시로 깨부수는 참으로 키우기 힘든 자식이었다. 우리 엄마의 마지노선은 정말 간단했다. 그저 있어야 할 곳에 물건이 잘 있으면 되는 것. 그거면 되는 간단한 우리 엄마의 일상을 나는 무참히 깨곤 했다. 쉽게 말하면 잘 어지르고 치우지 않았다는 거다. 그래서 학창 시절부터 "너는 어째 그러냐"라는 말을 랩처럼 듣곤 했고, 울면서 걸레질을 했지만 그 약효는 채 하루를 가지 못했다.


엄마는 애를 데리고 온 큰 딸에게 싫은 소리를 하기 싫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또 들었다.


"너는 사람을 참 성가시게 한다(너는 나의 말을 못 알아듣고 항상 공간을 어지럽힌다)"


그리고 애를 낳은 지 얼마 안돼 호르몬이 엉망진창이었던 나는


"역시 나는 엄마에게 쓸모없는 자식새끼야."


라고 자책하며 분유를 빨아먹고 있는 꼬마 옆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흑역사를 쓰기도 했다. 물론 엄마는 떠나는 날까지 몰랐을 것이다. 지금은 알 수도 있으려나.


타인이 보는 나는 그렇다. 키우기도 힘들고, 데리고 살기도 힘들며, 고쳐쓰기도 힘든 인간이다. 그럴수록 나는 체계적인 생존전략을 개발했다. 정말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정리정돈을 하는 나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다. 엄마가 이 글을 어디선가 읽어봤으면 좋겠다.


정리정돈이라 함은 일단 빨래와, 집 청소와, 화장실 청소와 기타 정리정돈, 이부자리 정돈 등이 되겠다. 그리고 쓰레기 버리기는 옵션이다. 부부는 이런 일을 일단 혼자 하려고 하면 안 된다. 배려한다고 혼자 시작하면 100% 싸움이 난다. 사람 마음이 원래 그렇게 간사하다. 못하는 것은 못한다고 하고 같이 해보고 좀 더 소질이 있는 부분은 내가 하면 된다. 둘 다 부지런하면 자주 치우면 되고 둘 다 게으르면 가끔 같이 치우면 되고 한쪽이 게으르면 답답한 사람이 치우면 되는데.. 이러면 또 싸움이 나니 최대한 싸움이 안나는 간단한 나의 생존전략을 밝힌다.


주방수납은 최대한 간단하게 한다. 자잘하게 수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양념통이 들어가는 찬장이면 그냥 양념통을 몽땅 넣으면 되는 거지 그 속에서 또 바구니로 이것저것 열을 맞추고 하려고 하지 않는다. 덩어리를 크게 잡는다. 서랍 하나에는 식기류가 들어간다고 하면 그냥 식기류를 그 서랍에 넣는 자체로 만족하면 된다.


접시는 최소한만. 밥그릇도 최소한만. 딱 식구 수만큼만 꺼내놓고 늘 쓰는 밥그릇과 국그릇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역시 통으로 넣어놓는다. 위치는 좀 바뀌면 어떤가. 그리고 내가 좀 그릇을 깨 먹는 타입이라고 하면 스텐이나 코렐을 쓰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몽땅 코렐이다. 손님이 와도 코렐이다. 왜냐. 코렐을 꺼내도 마음 편한 사람만 집에까지 초대하니까.


옷은 최대한 옷걸이에. 집이 너무 좁아서 부득이하게 개어놓아야 하는 경우, 상하의, 속옷 이렇게 세 칸으로 분리해서 넣어놓는다. 각 잡고 싶은 날은 각 잡으면 되고, 바쁘면 위치만 알게끔 넣어놓으면 된다. 옷도 최소한으로 둔다. 나는 무채색의 옷을 두세 벌 정도 사서 적당히 돌려 입는다. 티가 안 난다. 나머지 에너지로는 글을 쓴다. 아이의 옷은 조금 양이 더 많은데 아이 옷은 원피스는 걸어놓고 티셔츠와 바지는 개어서 4단 서랍장에 넣어놓는다. 상의, 하의, 속옷, 기타(양말, 모자, 머리핀 등). 남편과 옷장을 따로 쓴다. 남편 옷장은 전적으로 남편이 정리한다. 매우 깨끗하다. 남편은 나에게 각 잡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행복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청소는 보통 다이슨이 다 한다. 그리고 구석구석은 물티슈로 한다. 남편이 거의 매일 다이슨을 돌리기 때문에 찌든 먼지는 잘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집먼지 알레르기가 있어서 내가 재채기를 시작하면 물걸레나 물티슈로 미친 듯이 먼지를 찾아 헤맨다.


빨래는 주 1,2회. 흰옷이 거의 없어서 거의 섞어서 빤다. 세탁기가 다 해주고 건조기가 다 말려준다. 최대한 건조되는 대로 빨래를 옷장에 넣어놓는 것이 최대 난관. 지상 최대의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누가 갤 것인가. 답답한 사람이 개면 된다.


설거지는 2021년 1월 이후로 식기세척기가 하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도 음쓰처리기가 하고 있다. 남편이 다이슨을 주로 돌리다 보니 설거지와 음쓰처리는 내가 눈치껏 한다. 안 한다고 뭐라고 하지도 않는 것이 부부생활의 포인트다.


결혼 후 공동 공간이 많다 보니 내 습관이 바뀔 줄 알았다. 안 바뀐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에서 뜨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러나 조금씩 내 공간을 확장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고는 있다. 본의 아니게 집먼지 알레르기를 앓게 된 것이 주변 사람들에게는 조금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재채기를 하면 내가 정리나 청소를 시작하니까 말이다. 엄마가 이런 모습을 조금 보고 있다면 그래도 아, 이게 결혼하더니 사람 됐구나, 생각할테지.


이렇게라도, 여전히, 엄마를 성가시게 했다는 딸년의 오명을 벗고 싶기도 하고, 지금은 아니기도 하다.


fin.





이게 우리 꼬마가 놀러갔을때의 친정집. 좀 어질러진 상태가 이정도고 엄마가 계실때는 더욱 깨끗했다. 내가 가면 곧 초토화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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