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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Jan 03. 2021

우리 또 만나 #003

엄마보다 행복해질게


#딸은엄마의감정을먹고자란다     

책을 교과서처럼 읽고 있는데 속독을 하던 내가 하루 한 챕터 정독을 하고 있다. 한 문장마다 뼈를 강타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만큼 작가님이 엄마가 된 딸들에 대한 깊은 아픔과 애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그동안, 내가 삶을 대하는 방식을 엄마 필터로 한 번 걸러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고민했었다. 어느 날, 작가님의 강력한 문장을 읽고, 이게 그거였구나 하는 생각을 정리하려 한다. 어디선가 새롭게 생활하고 있을 엄마를 소환하고자 함도 아니요, 원망하거나 나를 자책하고자 함도 아니다. 그저, 알아차리고 오늘의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기 위함이다.      

엄마는 내가 행복해졌으면 했던 것 같다. 문제는 엄마의 방식으로. 엄마는 외할머니 이야기를 많이 했다. 외할머니가 그렇게 고생을 많이 했으며, 책 열 권을 써도 모자라다고 했다. 엄마가 인문계 고등학교 원서를 넣으려다가 외할아버지가 못 가게 하는 바람에 실업계고등학교를 가야 했던 이야기도 백 번 정도 들었다. 그 외에 내가 숱하게 들었던 엄마를 힘들게 하던 것들에 대해서는 생략한다. 어쨌든, 엄마는 (그렇게 살았지만) 나에게 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라고 했다.      

그런 엄마의 푸념을 들은 나는 엄마에게 환갑이 되면 시인으로 꼭 데뷔하라고 했다. 그러나 엄마는 생의 마지막 5년 정도의 시간을 병원을 다니고,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셨다. 시인으로 데뷔하지 못하면 내가 책을 내주겠다고 했다. 엄마가 쓰러지시고 엄마방에서 엄마의 메모들을 찾으며 울었다. 그저 마음을 다스리는 법이라든가 몸에 좋은 음식 만드는 법만이 빼곡히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함께 독립출판사를 등록했는데. 엄마의 글을 찾을 길이 없어 더 막막하다.  덤으로, 우리 시어머님도 그림을 정말 잘 그리신다. 동네 사진을 찍어드리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린 화보집을 출판해드리고 싶다. 내가 엄마에게 이 포부를 밝혔을 때, 엄마는 쓸데없는 일 그만하라고 했다. 제가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아마 그 “쓸데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 쓸데없는 일을 그만두었을 것 같은가? 대학 가서 자취를 한다고 했을 때도, 밴드를 한다고 할 때에도, 지방에서 교사를 한다고 했을 때도, 반응은 “그.. 그래 너 알아서 해.”였다.      

엄마가 나의 성과에 환호했을 때는 내가 재수를 한 끝에 임용시험에 합격했을 때였다. 그 이후로 엄마가 내 삶에 뭐 특별히 좋아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늘 시끄럽게 일을 벌이는 딸이 엄마는 역 마뜩잖았던 것 같다. 그저, 평범한 직장(교사가 되었으니 클리어), 평범한 사람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애를 키우고, 부모 제때 꼬박꼬박 찾아뵙고, 제사도 잘 지내는 그런 곳에서 적당히 엄마만큼 고생하며 그 속에서 누리는 행복을 원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있다. 결혼하면서 한복, 예단, 예물 등을 안 하겠노라. 그걸로 집을 사겠노라 했었을 때 엄마는 그래도 전세로 시작하는 게 낫지 않겠나 했다. 결혼식도 직장 가까운 천안에서 하길 원했던 것 같다. 우리는 춘천을 선택했다. 교직원공제회 찬스를 쓰기 위함이었다. 모든 것을 둘이 했다. 엄마는 작은 결혼식을 지향한다고 했지만 할거 해야 하지 않냐고 말했고,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 이후 특별히 결혼식 준비는 할 게 없었다. 정말 둘이서 노래 고르고, 영상 만들고, 집을 수리하는데 시간과 돈을 썼다. 그러나 결혼식 전날에는 뭔가 가족의 시간을 만들고 싶어서 전날 오시겠냐고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는 할아버지 생신이라 네 결혼식 날에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올라가야 한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그래서 나는 남편과 시동생과 시댁 작은방에서 결혼식 전날 밤을 보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엄마의 유니버스는 나와는 또 다르지 않나.      

결혼 이후에도, 약간의 문화 차이가 발생했다. 시가에 가면 두 밤 이상은 자고 오는 나에게 거기서 어렵지 않으냐고 물었다. 나는 어렵지 않았다. 제사가 없었고, 주로 외식을 했다. 뭘 바리바리 싸들고 오가지도 않았다. 그리고 친정에 오면 한 밤 자고 훌쩍 내려가고. 뭘 그리 빨리 내려가냐고 했던 엄마에게 2주 뒤에 올게 하고 나그네처럼 갔던 나.      

시가는 워낙에 멀어 1년에 두 번. 2~3일 자고 오곤 했고 친정은 1시간 반 정도의 거리라서 몇 달에 한 번 꼴로 아이만 데리고 종종 다녀오곤 했다. 비공식적인 친정나들이 때에는 남편에게 휴가를 준 셈인데, 굳이 데리고 다닐 필요를 못 느꼈다. 시가는 경조사에 대표로 한 명만 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우리 집은 그게 아니었는가 보다. 오려면 셋이 오등가.. 를.. 지금도 듣고 있다.     

하지만 엄마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은 안다. 집을 고칠 때 엄마가 내 계좌번호를 문자로 찍으라고 했다. 화장실 고치는 값이라도 부쳐주고 싶어서. 그래서 화장실도 엄마가 고쳐줬고, 새 아파트 이사 갈 때 냉장고를 가장 좋은 것으로 사주시고, 기타 등등.      

요란뻑적지근하게 개혼을 시키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을 내가 왜 모르겠는가. 그것 때문에 엄마가 산후도우미 자격증을 따고, 그 돈으로 우리 결혼시키려고 노력했던 것도 안다.     

우리 잘 지내는데. 생각 차이도 잘 조율하는데.
“내가 엄마보다 행복한가?”
라는 생각이 생각보다 크게 나를 붙잡은 것 같다. 많은 딸이 그러리라 생각한다. 제사 없는 집. 내가 어떠한 것을 추구하며 살아도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남편. 그리고 적당한 나이에 잘리지 않는 직업. 내가 너무 행복한가? 물론 그때는 그런 고민을 할 겨를이 없었다. 내가 잘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에 빠져 살았다. 그리고 동생들은 엄마의 스피커가 되어 나를 걱정하는 척, 내 옷차림과 싸구려 가방까지 지적하곤 했다.     

엄마가 쓰러지시고 나서 나는 개인적인 훈수를 많이 들었다.     

“네가 자주 찾아뵈었어야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야지.”
“엄마가 늘 너를 걱정하셨어.”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심하게 자책했다. 이거는 내가 대표로 욕을 먹으면 다른 이들의 자책이 반감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냥 참고 넘겼다. 그러나 엄마의 장례식장에서도 마냥 울 수만은 없는 엄숙한 나의 아우라는, 울면 안 돼. 넌 잘한 게 없어. 슬퍼야 해.라는 잘못된 생각의 결과물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스무 살이 된 나를 나무(여름 나무) 유니버스로 떠나보내기(=자취시키기)에는 갑작스러웠을 거다. 하지만 엄마는 쿨 하게 잘 보내주었다. 그리고 겪었어야만 할 첫 번째 상실의 아픔을 우리 둘 다 느꼈다. 자취방에 반찬을 가져다주러 오시면서 엄마는 몇 번을 울고 나가고, 나도 빈집에서 울었던 적도 많지만 그렇게 나이를 먹었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갔다.      

엄마, 나 있잖아. 고생하지도 않고, 잘 살아. 빚도 있지만 투자도 하면서 살아볼래. 교사 월급이 많은 건 아니라서 글 쓰면서 돈 벌 생각이야. 꼬마 아빠 덕에 아파트도 좋은 데 샀고, 사위 밥은 잘 안 챙겨 주고 있어. 각자 미니멀하게 먹으면서 잘 지내. 나는 내 스타일로, 행복하게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어 엄마. 엄마보다 행복한 게 두려웠던 나를 인정해. 엄마와 뭔가 다른 패턴의 명절과, 출산과, 그리고 육아를 하다 보니 그게 아닌가?라는 틀에 나를 가뒀던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하나만은 확실해. 상황이 어떠했든, 엄마는 나를 사랑해주었다는 걸. 그게 사랑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을. 앞으로도 잘 지낼게. 응원해줘. 그리고 내가 마음에 쏙 드는 자식 중의 하나는 아니었겠지만, 나도 엄마 사랑했어.     

나, 행복해지고 있어. 괜찮아. 외할머니 이야기를 열 권을 쓰겠다던 엄마,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쓰잖아? 나는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해 놓을 일 다 하면, 엄마 만나러 갈게. 아, 그때 있으려나? 환생하려나? 아니면 ‘경이로운 소문’에서처럼 한자리하고 계시려나? 나중에 알려줘 엄마. 내가 얼마나 행복해지는지, 지켜봐 줘.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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