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나무 Sep 22. 2020

우리 또 만나 #002

엄마가 떠난 첫 명절은 그래도 분주할거야


아침저녁으로 쌀쌀하여 나는 비염과 가디건을 달고 산다. 아, 비염에는 지르텍도 좋지만 우리나라에서 나온 지르텍 비끄무레한 것도 꽤 쏠쏠한 효과를 보았다. 그러나 심한 비염에는 지르텍을 쓸 수 밖에 없는 알레르기 비염.


환절기때 비염이 심해서 병원에 가서 십몇만원을 주고 피검사를 해봤는데, 세상에마상에! 고양이털 알레르기와 집먼지 알레르기가 있단다. 일단, 앞으로 평생 고양이를 키우지 못하게 되었고,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집에 놀러갈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 매우 슬프다. 그리고 집먼지 알레르기는 집이 깨끗하게 유지되어야 하는데, 설거지거리를 백두산만큼 쌓아놨다가 한꺼번에 치우고, 남편이 주로 다이슨을 돌리며, 매트를 방안에 24시간 깔아놓는것이 취미인 나로서는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알레르기다.


그리고 또하나. 나는 제사도 안지내는 시댁을 만난 주제에 명절 알레르기가 있다. 명절이 다가오고 있으니 명절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좋게 생각하면 매우 좋은 명절이고 긴 연휴를 생각하면 숨이 막혀온다. 나만의 자유를 달라! 이렇게 브런치에 아무말이나 씨부려도 되는 시간적인 자유를 달라! 하여간, 내가 찾아가는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명절마다 이 증상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는데, 원래 결혼하면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은 결혼 전에도 있었다. 아마 엄마가 지닌 알레르기가 나에게 유전된 것일수도.


엄마는 약 2년전에 물리적으로 농사와 제사에서 해방되었다. 신장이 급격히 안좋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늘 부모님의 생신과, 제사와, 명절과, 고구마캐는 시기와, 김장을 1년 내내 24시간 생각했다. 거기에 플러스 알파로 시누의 생일과, 이사와, 기타등등. 내 뇌 용량으로는 한계치다. 나는 직장과 아이돌보기로도 이미 과부하인데, 엄마는 그 어마어마한 일들을 달력에 빼곡히 표시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엄마는 지금은 자유롭다. 정말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그 곳에서.


어쨋든, 농사일과 음식만드는 일은 힘들다. 나는 감히 노동이라는 신성한 이름을 붙이고 싶다. 나는 범접할 수 없는 꼼꼼함과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실적에는 송편이나 만두는 빨간 고무대야가 가득 찰 정도로 소를 만든 다음에 그 소가 다 없어질 때 까지 빚었었고, 전은 종류가 많지 않았지만 옷에 기름내가 쩔 정도로 부쳤다. 그리고 끼니때마다 남자들 밥을 차려줘야 하는 엄마와 작은엄마가 허리가 어깨가 멀쩡했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 할머니? 할머니는 문명의 혜택이 더 없었을 적부터 떡을 떡메로 쳐서 손수 만드신 대단한 분이시다. 남씨의 일을 도맡아 해주셨던 남씨 아닌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하겠다. 울컥해서 적을수가 없다. 요약하자면, 내가 겁나게 힘들었는데 어른들은 오죽하셨을까.  


외가는 좀 나았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식구가 괜찮았다는 이야기이다. 우리엄마가 시누이가 되기 때문이다. 거기는 제사를 더 많이 지내는 약 종갓집에 준하는 곳이다. 김씨의 일을 도맡아 하는 김씨가 아닌 외숙모와 신씨 성을 가진 외할머니가 소고기 열근을 넣은 미역국과 야채와 고기가 들어간 수제 동그랑땡, 그리고 각종 해산물을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내고, 거기에 술을 좋아하는 외삼촌들은 하루에 여섯끼 정도를 먹으며 술을 마셨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저 외손녀중의 하나였던 나는 외갓집을 배회하면서 종종 개와 놀기도 하고, 논두렁을 걸어다니다 빠지기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명절 다음날 새벽이 되면 아빠는 우리를 깨워 차 밀리기 전에 후딱 올라가곤 했었다. 새벽은 새벽 3시에서 4시사이를 이야기한다. 우리 외갓집이 전국에서 늘 명절마다 밀리는 구간으로 나오는 인주사거리 인근이었기 때문이다. 어쨋든, 그렇게 정신없는 명절을 보내면 엄마는 앓아누울 새도 없이 우리 도시락을 챙기느라 새벽 여섯시에 어김없이 일어났다.


생생한 며느리 노동의 현장을 보고 큰 나. 스무 살 넘어서는 남 씨 제사의 노동력의 형편없는 일원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는 엄마의 노동력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일을 열심히 했다. 시집갈 나이가 되어서는 약간의 명절 증후군도 겪었다. 할머니 댁이 아니라 엄마의 시댁이라는 느낌이 강해진. 뭐. 그랬다.

그래도 사람 모이는 것이 재미있었느냐고 한다면 나는 매우 까다로운 성격이라고 철벽을 치고 싶다. 내 성격은

h 타입(내 멋대로 만들어낸 이름임)인데, 개별적으로 사람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는 것이 어렵다. 그런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강연을 하거나 발표를 하는것이 오히려 편안한, 이상한 성격이다. 이러한 내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특정 다수와 주고받는 친척모임에 가면, 약 패닉상태가 된다.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h타입인데.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라곤 살쪘네. 어느 대학 갔니. 몇 등 하니 따위의 소리. 모이는 게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성인이 되어 형편없는 자존감을 치유하기 위해 상담받고 치료받을 땐 원가족에서 원인을 찾고 했다. 근데 그게 원인은 아닌것 같다. 그냥 내가  h형 인간이라 그런거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서 모임에 갈 수밖에 없게 된다면 알프람 한 알을 먹고 가서 한잠 잘 셈이다.


그만큼 그냥 나는 친척모임이 어렵고 소규모 대화보다는 나를 한 번 보고 말 사람들 앞에서 한 시간 떠드는 것이 성격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 내 타입이 이런 타입인 거다. 지금도 동생들이 이모들과 사촌들과 활발히 왕래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그냥 내 성격이 그래서 그렇다. 서운하지도, 내가 원망스럽지도 않다. 나는 내가 챙길수 있는 만큼만 챙기면서 살고싶다.


지금도 아주 가끔 친척을 만난다. 아직도 살이 쪘단 소리는 듣는다. 추가로 어이 남선생. 교장선생님 되는가? 혹은 월급은 얼마야? 연금이 500씩 나온다면서? 라는 말같지도 않은 소리도 듣는다. 나는 h형 인간이라 이런 소리를 썩 기분좋게 듣지 못한다. 나는 우리 아이가 친척모임에서 그런 소릴 들으면 눈깔을 까뒤집을 수도 있다 아. 화가 나서가 아니라. 알레르기 반응이라 그렇다. 개소리 알레르기 반응이라고. 학계에 보고되지는 않았지만많은 여인네들의 울화통을 터지게 하는 알레르기다.


결혼하고 시댁이라는 곳을 경험한 자는 알 것이다. 우선 나는 비교적. 아니 상당한 로또권에 든 며느리라는 점을 밝혀둔다. 내 인생에 대해 전혀 터치하지 않으시는 좋은 시부모님이 계시다. 많이 격려를 해주시는 편이다. 남편도 어디 가서 내 흉을 보며 내 귀를 간지럽게 할 이도 아니다. 번 돈을 내놓으라고 장롱 문짝을 뜯는 이도 아니다. 젠틀하고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다. 다만 내 이런 지랄 같은 성격에 하루하루 야위어가는 불쌍한 영혼임을 미리 밝혀둔다. 그걸 피할 수 있는 공간을 집에 두어 군데 만들어놓고 내가 지랄병이 날 경우 그곳으로 도피할 수 있다.


이렇게 결혼을 잘 한 편이긴 함에도 불구하고! 제사 없고 성묘 없는 시댁인데도! 가서 2박 또는 3박 혹은 4박을 하는 일은 남편의 생각처럼 그냥 놀고 쉬고 부모님과 얘기하고 오는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하나. 외로우며
둘. 조심하게 되고
셋. 끼니마다 주방에서 종종걸음을 쳐야 하는.

하는 일이 없어도 쉽지가 않다. 진심이다. 딸 같은 며느리? 일단 나는 그렇게 못한다. 내가 딸처럼 굴면? 그게 더 충격의 도가니이기 때문이다. 시댁의 깨끗한 인테리어는 곧 내손에 먼지 구덩이로 변할 것이다. 소파와 혼연일체가 된 내 모습. 설거지를 백두산처럼 쌓아놓는 내 모습. 전자책을 읽으며 낄낄대는 내 모습. 딸내미와 그림 그리기를 하며 색연필을 거실 바닥에 나부끼는 내 모습. 찮으니 치킨을 시켜먹거나 식사 안 하고 자빠져 자는 내 모습. 딸내미를 형제자매에게 맡기고 옆에서 침을 흘리며 자는 내 모습. 배가 바닥에 쏟아지는지도 모르고 고무줄 바지를 뚱기면서 자는 것은 옵션. 치와 클렌징을 안 하고 밤 열두 시까지 코미디 프로를 찾아 채널을 돌리는 내 모습.


이게 집에서 딸처럼 쉬는 내 모습인데 남편님은 나의 이런 모습을 용납할 수가 있습니까? 라고 말하면 그것은 백 프로 거짓말일 거다. 시부모님이 보고 계시는데 딸처럼 뒹굴거리는 흑곰 한 마리가 사랑스러울 거라고? 아니라는데 내가 애지중지하는 에코백 두 개를 걸 수 있다. 이런 복에 겨운 시댁을 가는 것도 내가 외로움과 긴장감에 방귀도 제대로 못 뀌는데 다른 집 메눌들은 안 봐도 비디오다. 올해는 정부에서 이동제한을 걸고 있지만 나는 안다. 어떻게든 가야만 하는 집이 많다는 것을. 부디 아프지 말고, 알레르기도 말고, 딸처럼 있을 수 있어도 징역 사는 것 아니라면 딸처럼도 있어보자.

남편들이 와이파이님을 이해하라고 쓰는 글 아니다. 내가 누군가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걸 아니까 말이다. 살아보니 어떤 영역은 이해 영역도 탐구영역도 아니더라. 그냥 무조건 반사만이 살길인 영역도 있더라. 남이 나를 이해하듯 나도 남을 그렇게 이해해야 하는 영역. 내가 꾸린 가정이라면 더더욱 무조건 반사가 답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여. 정부는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으라고 하지만 러 사정으로 고속도로에 몸을 싣고 갈 것을 안다. 부디 안전 운전하시고 로 무조건 반사적으로 배려해보고 무엇보다 건강하게. 그리고 엄마 앞의 딸처럼 정신줄도 놓으며 내 몸과 마음건강을 잘 챙기자.


아마 아버님은 몰라도 어머님은 얘가 미쳤나 생각하시다가도 그냥 나를 있는그대로 받아들이시는 날이 올것이다. 우리세대가 미래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거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시간을 줄여주는 일. 아직 멀었는데 왜 뜬금없이 명절에 꽂혀가지고 지르텍 먹고 졸린 눈을 비비며 글을 쓴 건지 모르겠지만 무튼. 우리는 소중하니까. 오늘도 피스!


*이 글을 제사 없이. 하늘에서 편히 첫 명절을 보내고 계실 엄마의 영전에 바칩니다. 엄마. 푹 쉬고있지? 딸내미도 잘 지내니까 걱정말고 맛있는거 많이 먹고 일도 하지 말고 외할머니가 해주시는 밥 먹고 잘 지내. 또 만나*



이전 15화 우리 또 만나 #00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