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퍼로 대성통곡
울리는 정도가 아니라 대성통곡
베란다 문을 열고 아침 날씨를 확인했다. 간밤에 눈이 많이 왔다. 밤새 경비 아저씨께서 제설 작업을 하셨는지 도로는 다닐만할 것 같다. 그리고 오랜만에 폐와 대장을 찌르는 듯한 추위가 옷을 뚫고 들어오지 않는다. 한 3분 정도 이대로 베란다에 더 서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 나는 감히 '오, 코트 입어도 되겠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기온을 살펴보니 영하 4도다. 영하 18도를 한 일주일 겪고 나니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실감 났다. 영하 4도에 코트를 생각하다니. 나는 분명 11월부터 패딩을 입고 다닌 추위 타기 일인자인데 말이다. 영하 4도가 괜찮은 날씨라는 것은 얼어버렸던 세탁기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세탁기가 수건을 안전하게 삶아 주는데, 암. 영하 4 도면 감지 덕 지한 날씨지.
자, 오늘도 꼬마와 출근이다. 꼬마는 자기가 입을 옷을 착착 챙겨 입고 양말도 신었다. 머리는 엄마 헤어숍에서 본인이 원하는 대로 삐삐로 해서 하나로 묶는다. 아침을 거하게 먹는 것을 싫어해서 매일우유 200ml에 어쩔 때는 반숙란 하나를 추가해서 먹는다. 그러면 나도 반숙란 두 개와 동치미를 먹는다. 그리고 나도 옷을 챙겨 입고, 간단히 선크림까지 바르고, 오렌지색 립밤을 바르고 헐렁한 패딩을 걸친다. 그리고 아이는 신발을 먼저 신는다. 집안 공기가 따스해서 패딩을 먼저 입으면 거의 울면서 더워한다. 그렇게 오늘은 큰 이벤트 없이 현관문을 나선다.
주차장으로 가니, 밤새 내린 눈이 앞유리창에 소복하게 쌓여있었다. 차를 주말에 방치해 둔 탓인지 앞유리창은 약간 얼어있었다. 긁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단 시동을 걸고, 꼬마를 카시트에 앉혔다. 꼬마는 "나는 이제 여섯 살이라고!" 하면서 카시트에 앉더니 안전벨트를 혼자 착착 해냈다. 물론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운이 좋은 날이다. 나는 앞유리창을 국자만 한 제설기(?)로 벅벅 긁었다. 선팅이 바깥쪽에 되어있던가 안쪽에 되어있던가를 생각하면서 비교적 조심스럽게 말이다. 그리고 큰 눈 덩어리들이 앞 유리를 타고 본넷 쪽으로 흘러올 때쯤, 다 됐다고 생각한 나는 차에 탔다.
꼬마가 굉장히 흥분한 상태였다.
"엄마, 엄마! 강아지! 강아지! 저기 보라고!!"
"강아지? 어디?"
"차 유리창에. 봐. 진짜 강아지야!"
나는 주차장 저 쪽 너머에 길 잃은 강아지가 돌아다니는구나 생각하며
"오, 그래? 무슨 색 강아지인데?"
라고 말했다. 동시에 와이퍼로 앞유리창에 있는 커다란 눈 건더기를 치워버렸다.
순간,
"엄마아, 그게 아니라고!"
하면서 꼬마의 큰 눈에 눈물이 그렁거리는 것이 아닌가. 당황했다. 앞유리를 와이퍼로 닦는 일은 늘 있는 일인데.
"꼬마야, 왜 울어? 응?"
꼬마는 3분 정도 대성통곡을 했다. 마스크가 다 젖어버릴 정도로 엉엉 울었다. 나는 사이드를 풀고 D로 기어를 놓으며 다시 물었다.
"왜 우니? 응?"
천천히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아이는 더 크게 울었다. 오늘 괜찮았는데, 특별히 내가 아이의 마음을 상하게 할 일이 있었나?라고 생각하는데 꼬마가 입을 뗐다.
"눈이 강아지 모양이었는데, 엄마가 치웠잖아."
하고 꼬마는 또 울었다. 그때 생각했다. 앞유리를 치우면서 눈덩이들이 강아지 모양이 되었었고, 꼬마는 그것을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나는 그 강아지 모양의 눈덩이를 와이퍼로 치워버린 것이다. 아뿔싸. 세상에. 꼬마의 마음속 눈사람을 와장창.. 내가 전날 인터넷에 눈사람 부신 사이코를 보면서 엄청나게 욕했는데.. 그게 내가 됐구나 싶었다. 의도한건 아니지만 부순 건 부순 거다.
"아.. 그 강아지? 엄마가 봤어. 봤는데, 어린이집 가야 하니까 치운 거야. 앞이 보여야 되니까.."
"거짓말! 못 봤잖아!"
평소에 그렇게 악을 쓰고 우는 타입이 아닌 꼬마가 더 크게 울었다.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내리지도 않고 울었다. 울면서 어린이집에 들어가기가 싫다는 거다. 그러나 출근시간에는 내가 다 울 때까지 기다려 줄 수가 없다. 그래서 번쩍 안아서 손을 잡고 가는데 입구에서 눈물이 안 멈춘다며 이러면 친구들이 흉본다면서 계속 안 들어간다. 결국 실랑이를 하던 나는 입구에서 선생님을 불렀다. 꼬마는 진짜 화가 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웃으면서 나오셨다.
"아침에 속상한 일이 있었어?"
"예.. 앞유리창에 강아지 모양의 눈이 있었는데 그걸 제가 와이퍼로 치워버렸네요 선생님."
내가 대신 대답했다.
"어머, 우리 꼬마가 속상했구나."
선생님이 달래주시니 꼬마가 겨우 한마디 했다.
"엄마가 부셨어."
아이는 내 손을 뿌리쳤다. 화가 끝까지 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선생님 손에 이끌려 어린이집으로 들어가면서도 꼬마는 계속 쿨쩍거렸고, 하원 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는 어린이집에 들어가서도 계속 속상하다고 말했었다고 얘기했다. 그래, 집 앞에 꼬마 눈사람이라도 만들어야지 생각하던 그때, 꼬마가 말했다.
"엄마, 나 오늘 하트 네 개 접었다? 제일 큰 거 엄마 줄게. 우리 집에 가서 씨름하자!"
지금의 꼬마는 신이 나있어서 정말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자나깨나 눈조심. 모르는 눈사람도 다시보자. 그리고 눈사람 부수지 말자. 진짜 올라프가 될 지도 모르니까.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