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사를 했다. 눈이 그림같이 쏟아지던 날의 이사는 어떠했던가에 대한 단상. 사실은 시트콤. 시작한다.
#그분들
아침 일곱 시 십오 분. 그 눈보라를 뚫고 그분들이 찾아오셨다. 그분들은 늦지 않으신다. 정말이지 신속 정확의 달인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여러 번의 포장이사를 경험하며 나는 그 자리에서 버릴 것과 챙길 것. 남길 것을 체크하고 집 밖에 있는 것이 가장 빠른 이사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남편은 나에게 정산하고 바로 와달라는 애처로운 한마디를 남긴 채 바로 세종으로 갔고 나는 뒷정리와 각종 요금 정산을 위해 잠시 남아있었다.
#눈
눈이 정말 많이 왔다. 차 앞유리에 글씨를 쓰고도 남을만한 두께다. 이삿날은 편한 복장이 최고라 운동화만 남겨두고 다 신발장에 넣어놨는데. 운동화 다 꼬질꼬질해졌다. 발도 시리고. 이 아파트를 빠져나오려면 반드시 언덕을 내려가야 하는데 어찌어찌 이 시간에 글을 쓰고 있으니 나무님들의 상상에 맡긴다. 부자 되라는 문자를 열 통은 받은 것 같다. 감사해요^^
#엘피지 가스의 위엄
이 동네는 엘피지 가스를 쓴다. 그냥 따뜻하게 데워졌다 싶으면 한겨울에 월 15만 원이다. 한번 데워지면 온도조절이 안된다. 22도로 설정했는데 실내온도 27도 되어서 놀란적도 많다. 아무래도 이 집의 보일러가 약간 문제이지 싶은데 엘피지는 그것을 배려해주지 않는다. 무정한 계량기 숫자만 올라갈 뿐. 그래서 나는 지난달과 이번 달 엘피지 가스요금 삼십육만 사백이십 원을 이체. 관리비 십이만 오천육백 원 이체. 전기요금 삼만 육백오십 원을 이체한 뒤에 이 집을 떠날 수 있었다.
#뚫어뻥도 우리 거예요
집 최종 점검차 빈집에 갔다. 꼬마가 엄마! 우리 비행기! 이런다. 현관문에 붙이는 행운의 비행기다. 그것도 챙기고. 몇 가지를 챙기는데 전문가용 뚫어뻥을 놓고 가신 거다. 그 길쭉한 것 말이다. 내가 본의 아니게 변기를 잘 막히게 하는데 그때마다 오만 원을 내면 거의 한 달 식비와 맞먹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샀다. 전문가용. 그걸로 얼마나 많은 돈을 절약했는데 그걸 놓고 가셨다니. 평소에 내가 얼마나 깨끗하게 관리했는데.
#앞유리 좀 닦을게요
눈발이 날리다 보니 뭔가 끈적한 눈발이 달라붙어 수분도 없이 앞유리창에 쩍 달라붙는다. 워셔액도 없다. 당진 대전 고속도로 2차선에서 거대한 트럭들 사이에 껴서 60킬로로 겨우 달린다. 앞이 안 보여서 ㅜ 간신히 휴게소에 들러 워셔액을 사서 보충하고 놀고 있는 물티슈를 처리할 겸 앞유리를 닦고, 남은 걸로 손잡이도 닦는데 웬 할아버지가 ㅡ 눈 오는 날에는 암만 닦아도 소용없는디.
바람처럼 사라지신 할아버지를 향해 나는 모기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유.
#여기가 왜 밀려
당진 대전은 정말 밀리지 않는 구간이다. 내가 경험했을 땐 그랬다. 그런데 눈 쏟아지는 오늘. 마곡사 부근에서 탑차가 사고가 났다.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는데 30분은 기다렸고 30분은 기어갔다. 한 시간 거리를 세 시간 만에 도착했다. 강변북로인 줄.
#이삿짐과 인터넷과 정수기와 가스와
남편이 먼저 세종으로 가자마자 가스 연결 완료. 이삿짐이 다 올라왔고 늘 그렇듯 내가 생각한 대로 다시 정리하다 보니 배가 고파 짜장면을 시켰고. 그때 인터넷 기사님이 오셨다. 그리고 잠시 쉬어야지 할 때 정수기 기사님도 오셨다. 싱어 게인 볼 수 있겠다.
#세탁기는 왜
세탁기에 시범 삼아 수건 한 장 넣어 돌리는데 찬물 쪽 호스가 샌다. 다용도실이 거품 나라가 되었다. 드라이버까지 동원하고 얼굴에 물벼락을 맞았지만 알고 보니 호스가 좀 꼬여있어서 찬물이 제대로 공급이 안되고 샜던 것. 내일 한파라서 얼겠다 ㅜ
#발가락 부상
젖 은발로 다용도실과 거실을 왔다 갔다 하다가 갑자기 미끄러지면서 요가매트를 밟으면서 내 왼쪽 엄지발가락이 내 몸무게를 잠시 지탱했고 바로 와장창. 내 궁둥이랑 허리가 여태 쑤시고 발가락은 파스를 붙인 뒤 붕대로 칭칭 감았다. 이사 후 첫나들이가 정형외과가 될 예정이다.
#신난 꼬마
꼬마는 정말 신났다. 잠도 안 자고 새집을 계속 뛰어다녔다. 텔레비전과 리모컨을 만들어 에미를 크리에이터를 시키지 않나 종이액자를 뚝딱 만들지 않나. 그 기특함만큼 반응을 못해준 게 미안하고 잘 놀아줘서 고맙다.
#소소한 빈정 상한 사연
엘피지 가스 너무 비싸다. 이삿짐 직원 퇴근하신 뒤에 모니터 거치대 뿌라진것 발견. 말을 할지 말지 조금 전까지 고민하다 말았다. 식탁을 사려는데 의자가 이리 비싼 물건인 줄은 처음 알았다. 배달앱 수수료 물까 봐 직접 전화로 배달시켰는데 요기요보다 천 원 더 받는 배달료 빈정 상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 뷰는 정말 일품이다. 지역난방이다. 아이가 좋아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정말 좋다.
그거면 됐다.
더 더 더 잘살자. 즐겁게 사랑하며 살자.
잘 돌아왔어.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