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스토리라는 세상 속에서 이런 작가가 되고 싶다
어릴 적 시골 할머니집에서 아침 산책길에 나선다. 죽은 개구리를 발견하고 놀란다. 돌아오는 길에는 저기 저 어딘가에 죽은 개구리의 끔찍한 시체가 누워있지 싶어서 고개를 외면하고 저만치 멀리 걷는다. 외면했으나 머릿속에는 끔찍한 모습이 떠오른다. 고개를 저으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저만치 걷는다. 개구리의 시체를 마주할까 두려웠던 그 마음처럼, 나에게 외면하고 싶었던 기억과 시간들이 있었다. 그 시절, 그 장소, 그 사람을 떠올릴까 봐 저만치 길을 돌아 걸었던. 분명 존재하는 것을 외면하며 저만치 돌아서 걸었던 시간들.
올해 여름, 갑자기 그 시간들, 그 장소, 그 사람을 한 번은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여행이란 설레는 마음으로 떠나는 것. 그러나 혼자 떠나는 나의 첫 여행은 그렇지 못했다. 내 안의 내가 떠밀어서 시작한 여행. 20년을 덤덤하게 살아왔는데 그 짧은 여행 후 내 마음은 올여름 폭우 같았다. 하늘에 구멍 뚫린 듯 비가 쏟아지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나기도 하던 올여름 미친 폭우. 다잡기 어렵도록 마음이 출렁이다가 그러다 깊은 물속으로 빠져드는 침잠의 상태를 반복했던 여행 이후의 나. 후회, 아쉬움, 미안함.. 그리고 이 모든 감정들이 어디에도 닿지 못할 것 같은 막막함. 어느 새벽엔 그 막막함에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이대론 안 되겠구나, 내 속에서 자라는 이 많은 말들과 생각들을 글로 덜어내야지, 지나간 시간과 사람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마음먹은 후부터 조금은 숨이 쉬어졌다.
나를 관조하듯 바라보는 또 다른 자아가 생긴 느낌. 내 생각과 감정을 글이라는 제3의 매개로 옮기면서 출렁대는 내 마음이 잔잔해진다. 지난 시간과 용기 있게 마주하고, 다시 건강하게 세상 속에 소속된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 글이 필요했다. 브런치스토리라는 세상은 나를 작가로 불러주었다. 수줍게 손드는 아이처럼,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닿는 편지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는 나에게 자리를 내어준 브런치스토리라는 세상. 닿을 수 없는 것들을 닿을 수 있도록, 창문도 없는 방에 갇혀 있는 나에게 세상과 닿는 창이 하나 생긴 느낌. 침잠의 상태의 나를 물 위로 떠올려주는 부력.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면서 나는 근육이 생기는 것 같았다.
글을 쓰는 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던 나. 무언가 끄적거리며 작가 흉내를 내기도 했던 나였다. 그러나 내 젊은 30년을 아프게 지배하는 인생 사건으로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한 사람으로 살았다. 일기라는 것도 쓰고 싶지 않았다. 적나라하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일기. 그러다 올여름, 지난날과의 화해를 위해 혼자 떠난 여행 이후 나는 변했다. 용기라고 해두자. 지난 시간들, 아파했던 젊은 나, 나와 무관하게 잘 돌아가는 세상과의 화해를 시작하는 용기.
2025. 8. 15. 광복 80주년. 나도 이 날 광복을 맞았다. 브런치스토리에 작가 신청을 한다. 쇠말뚝 박혔던 그 시절을 벗어나 빛을 보는 날. 나도 그랬다. 세상과 연결되고 싶어진 나는 글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작가가 되어 세상을 비추는 등대가 되겠다, 아픈 마음을 보듬어주는 글을 쓰겠다.. 뭐 이런 거창한 작가의 꿈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 나의 꿈은 이기적이다. 일단은 나를 보살펴야 하는 것.
이렇게 소박하고 이기적인 꿈을 꾸는 나에게 작가라는 호칭을 붙여주다니. 민망하고 수줍게 첫 글의 발행을 눌렀다. 핸드폰으로 울리는 알림음. 내 글을 읽어준 고마운 사람들을 알려주는 그 소리. 브런치스토리 작가소개란에도 적었지만, 일기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글도 누군가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이라는 것. 그런데 내 글을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나는 이미 내 꿈을 이룬 듯 행복해졌다. 첫 구독자가 되어준 분의 조언. 구독자, 좋아요에 연연하지 말고 나만 상상한 이야기를 쓰세요. 너무나 지당하신 조언이지만 글이라는 속성은 결국 누군가에게 닿기를 원하여 세상에 나온 것. 나는 내 글을 읽어준 사람들이 나에게 보내주는 그 소리를 너무나 기다리고 있는 속물이 되어간다.
이렇게... 자꾸만 어딘가 닿고 싶어지는 나. 그저 독백처럼 쏟아내려고 시작했던 글이었는데 해바라기처럼 세상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교보문고에 내 책이 등장하기를 바라지도, 인기작가가 되어 돈을 벌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그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점조직이란 말. 넓은 세상 점점이 흩어져 있는 비밀스러운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서로에게 좋은 향기가 되어주는 것. '봄비'라는 비밀요원이 쓴 메시지가 누군가에게 닿고 닿아 임무를 완성하는 첩보 영화를 상상한다. 그래,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날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한 나이니 만큼, 일제강점기, 비밀스럽고 중요한 임무를 맡은 독립운동가처럼. 내 작은 노트북에서 시작된 글 하나가 세상 속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것.
글은 세상과 내가 연결된 끈. 내 글이 어딘가 닿았다는 알림음은 나를 깨어있게, 살고 싶게, 행복하게 해 주었다. 시작은 소박했으나 진화 중인 나의 꿈. 나의 글이 나 아닌 다른 비밀 점조직 요원에게도 하루의 행복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브런치 스토리라는 세상 속 나의 꿈이다. 모를 일이다. 내 꿈이 더 원대하게 진화될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