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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놓친 화해

우리 언제 서로 주고받아볼래? 그놈의 사과를...

by 봄비

내 오랜 미제사건.


인생을 지배하는 사건은 누구에게나 존재하겠지.

나에게도.

너무 길고도 깊이 자리 잡아

내 젊은 30년의 시절을 지배했던 사랑과 이별.

괜찮은 줄 알았지만 아직도 진행 중이었던.


왜 아직도 진행 중일까.

미제사건을 파헤치는 형사처럼

올여름, 이 사건을 속속들이 파헤쳤다.


어른이 된 내가 어렸던 나를 바라본다.

서로 다른 자아를 가진 것처럼.

오래전 헤어지고 지금은 잘 살고 있을 K가

그리워서는 아니었다.

그 시절, 어린 내가 안쓰러웠다.

힘들었겠다...

상처받은 어린 나를 안아주고 싶은 나.

K의 마음이 이제는 들여다보여

니 마음 몰라줘 미안했어..

용기 내어 사과하고 싶어진 나.


우리는 미안하다는 말을

주고받지 못한 채 헤어졌다.


너는 정말 괜찮니?


내 마음이 투영되어 아이들 세상에 개입한다. 정말로 괜찮아질 때까지 미안해 해야 하는 거라고.


아이들이 사소한 일로 싸운다. 내가 보기엔 그게 그렇게도 억울할까 싶은 작고 귀여운 일들로. 하지만 아이들의 갈등 속에도 분명 가해자와 피해자는 존재한다. 나와 K처럼 때론 한 사람에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두 모습이 겹치기도 하면서. 어른이 중재에 나선 아이들의 싸움은 먼저 용기 낸 한 명이 친구의 어깨에 슬쩍 손을 한 번 얹으며 미안해라고 말하면서 끝이 난다. 그렇게 성의 없는 '미안해'를 들으면 억울했던 아이는 또 '괜찮아'를 말한다.


어쩌다 보니 교직생활의 반 이상이 되는 세월을 1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이런 아이들의 사과를 보며 어른들의 사과를 떠올린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이런 사과가 먹히기 시작하면 사과는 응당 그렇게 하면 되는 거지 하는 생각이 아이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겠지. 지난 시절 우리의 두루뭉술하고 실체도 없는 사과를 떠올린다. 너는 정말 괜찮니?


#1. 역할극을 한다. 나는 실수로 친구를 넘어뜨리는 가해자의 역할을 맡는다. 사전 대본도, 리허설 따위도 없다. 감독이자 연출가이자 가해자 역할을 맡은 내가 모든 걸 지휘한다. 첫 번째 장면, 친구를 넘어뜨리고 아이들이 흔히 하는 그런 사과를 하는 나. 넘어진 아이에게 물어본다. 선생님이 이렇게 사과를 하니까 넘어져서 아픈 무릎이 갑자기 나았니? 아이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이번엔 친구에게 말로 상처를 주는 가해자의 역할을 또 맡는다. 또 흔하고 가벼운 사과를 하는 역할. 상처를 받은 역할을 한 아이에게 묻는다. 선생님이 이렇게 사과를 하니까 억울했던 니 마음이 사라졌니? 또 아이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왜 너희들은 맨날 그런 사과를 받고 '괜찮아' 이렇게 말하니.


#2.나는 또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가해자 역할을 맡는다. 넘어진 아이에게 급히 다가가 호들갑스럽게, 그러나 걱정 어린 표정으로 "아이고, 미안해. 실수였어. 괜찮니? 보건실에 갈래? 아님 구급차 불러줄까?" 일부러 과장된, 그러나 진심 담긴 사과 장면을 연출한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호들갑스러운 말과 몸짓에, 그리고 구급차라는 말에 빵 웃음을 터뜨린다. 너도 나도 손을 들며, 선생님, 저도 해볼래요! 난리가 난다. 선생님이 이렇게 사과를 해도 넘어진 무릎이 나아지는 건 아니야. 그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지만 선생님의 진심 어린 걱정이 닿으면 기분 나빴던 마음은 싸악 사라지지. 이번엔 너도 나도, 내가 맡았던 호들갑스러운 가해자여 역할을 자기가 해보겠다고 난리다.


내 인생을 지배하는 그 사건은 차치하고. 어른인 나에게도 상대에게 사과를 받고 싶은, 아주 사소하고도 시답잖은 사건들이 나날이 펼쳐진다. 때론 내가 이런 걸로 섭섭하거나 화가 나는 게 정상인가 싶은 생각이 들 만큼의 사소한 일들. 그런 일들을 그냥 참고 넘어간다. 좋은 사람 코스프레가 습관이 되어가는 나.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면 어떤 순간은 정말 사과를 받아야 하는데도 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 앙금을 만들어간다. 나는 괜찮지 않다.


또 내 감정이 투영된다. 괜찮지 않은데 사과도 못 받은 나의 응어리. 나는 아이들에게 꼭 묻는다. 정말 괜찮니? 처음엔 괜찮다고 말하다가도 내가 자꾸만 정말 괜찮니?라고 물으면 아니라고 대답한다. 친구가 괜찮아질 때까지,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닿도록 해줘야 해. 정말로 괜찮아질 때까지.


조금 더 상처받았거나 조금 더 고집 센 아이는 선생님의 이 말에 힘을 얻는다. 아무리 사과를 해도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 아이. 어떤 아이는 자기가 어른이 될 때까지도 괜찮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참 어렵다. 각자의 마음은 자신이 제일 잘 아는 법. 교사인 내가 '이제 괜찮아질 때도 된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할 수도 없는 일이다. 용서는 용기가 필요한 거야. 친구의 진심이 느껴진다면 용서할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해. 이렇게 말하기는 하지만.. 참 어렵다. 그래, 너는 그렇게 용서할 줄 아는, 용기있는 사람이었니?

사과는 마음에 닿아야 그 역할을 마친다.

그저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사과.

구체적이지도 않은 사과.

상황을 모면하려는 얕은 사과.

아이들의 사과와 용서의 과정을 지켜보며

어른들의 세상을 비추어본다.


미안하다는 말.

날 서있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킨다.

고맙다는 말.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든다.


내가 느낀 많은 관계의 벽은

그 두 가지 말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유연하고 말랑말랑한 아이들에게

미안해, 고마워라는 말

말의 매직을 알려주려고

무던히 노력을 한다.


나와 K가 서로에게 하지 못했던

사과의 말.

괜찮냐고 물어주지 않아

응어리진 마음.

나는 유치하게 내 마음을

아이들 싸움에 투영하고 있다.


미제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으나....


다시 나의 미제사건 이야기.

내 오랜 미제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듯하다.

나의 30년 묵은 미제사건이 해결되려면

미안하다는 말이 필요하다는 생각.

서로에게 비수를 꽂아대던 그때,

그 시절에 했어야 마땅한 미안하다는 말.

두루뭉술한 미안함으로

잊혀지지도 괜찮아지지도 않는 상처들.

괜찮지 않았는데

괜찮지 않다고 말도 못 했던 시간들.

그 시절 했어야 할 화해의 절차를 놓쳐

풀리지 못한 마음의 응어리.

나의 상대도 그랬을까.


그러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도

더 진전이 될 수 없다.

서로가 피의자, 피해자이기도 한

이 사건의 주인공들은

만날 수 없으니.


그놈의 사과를 주고받지 못해서

아직도 풀리지 않는 그 응어리.

이 글을 읽는다면

우리 언제 서로 주고받아볼래?

그놈의 사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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