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가랑이가 찢어질 듯.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니.
이제 좀 살만해 졌나봐.
슬금슬금 본성이 드러난다.
그저 대나무숲에서 외치듯 감당하지 못할 것들을 떠들고 싶었는데 이제 누가 들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자다가도 띵띵 울리는 그 소리. 내 글이 누군가에게 닿았다는 그 소리. 코골고 자던 나도 깨운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잠이 부족해도 아침이 행복하다. 아침 일찍 깨어 오늘 하고 싶은 고백거리를 또 떠올린다.
모든 게 처음이다. 내 얘기를 하고 싶어진 것. 세상 속에 내 비밀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 글쓰는 세상을 만난 것. 세상 속 모르는 이로부터의 소식을 기대하는 것. 그 소식이 얼마나 행복한지 느끼는 것. 하고 싶은 게 생긴 것. 넷플릭스를 뒤지지 않는 밤이 생긴 것. 일찍 일어난 새가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밤새 생각난 것들을 적기 위해 아침을 일찍 맞이하는 것.
가당찮은 욕심이 가득 찬 나. 모 아니면 도. 적당히가 없어서 찰랑찰랑 살고 싶다고 고백했던 나. 고유진을 안지 얼마나 됐다고... 내 글을 세상에 내놓은지 얼마나 됐다고. 내가 쓴 고유진 글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본다. 아, 내 글 속에 고유진을 더 어필해야 앞쪽에서 검색이 되나? 아무 글에나 다 #고유진 태그를 달면 되나? 유행하는 그 무엇들을 해보지 않았으니 알 리가 없다. 그런데 설상가상. 이 글터에서 작가라 불러주니 더 가당찮은 욕심을 갖는 나. 혹시 고유진씨가 내 글을 읽고, 진짜로 나에게 노랫말을 지어달라고 하면 어떡하지. 미리 만들어 놓아야 할까. 속물. 그러나 속물처럼 살고 싶어졌다.
이렇게 욕심 많은 나지만, 오랫동안 난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었다. 유일하게 하고 싶었던 것은 시골 어딘가, 인연이 닿는 허름하고 싼 농가주택 하나를 갖는 것. 봄이면 목련나무, 여름이면 진분홍 배롱나무, 가을이면 감나무. 이렇게 작은 묘목들을 사다 심고, 철마다 피어나는 꽃을 가꾸며 살고 싶었다. 창을 열면 빗소리가 고스란히 들리는 집. 석면이 위협하는 슬레이트 지붕도 상관없었다. 슬레이트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의 낭만. 그 빗소리를 고스란히 들을 수 있는 집. 나 혼자 오롯이 외로울 수 있는 집. 그런 집에서 계절 속에, 자연 속에 파묻혀 잊혀지고 싶었다. 하지만 50살 먹은 딸이 혼자 여행하는 것도 그리 안타까운 우리 엄마가 딸 혼자 시골집에서 사는 걸 어떻게 보겠나. 유일하게 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이루지 못할 꿈이었다. 그저 상상으로만, 여름에는 빨간 덩굴장미가 핀 집이 좋겠지..
내가 한창 심각했던 시절엔 세상이 폭삭 망하길 바라기도 했다. 죽는 건 무서우니까.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만 죽으면 우리 엄마는 어떡해. 그런 마음이었다. 죽는 것 말고 그럼, 어느날 내가 뿅 사라지는 것.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이 오길 바랬다. 그랬던 내가, 지금, 이 세상 속에서 끈을 찾고 있다. 오랜만에 마음 설레는 나. 너무나 오랜만에 진짜로 하고 싶은게 생긴 나.
현재 시간 구독자 4명인 나의 글터. 그런데 나는 4만명 뒷배를 가진 사람같은 기분이다. 그러다 또 생각한다. 이 4명의 구독자는 어떤 마음으로 구독을 눌렀을까. 왜 구독을 누르셨어요?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 무언가 시작하면 이런 식인 나. 이렇게 될 나를 알기에 피곤해서 어떤 것도 시작하지 않을 때도 있다. 어쨌든.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4만명 뒷배를 가진 나는 뭔가 마음이 탄탄하다. 아이들이 말도 안되는 일을 저질러도 나는 변신괴물이 되지 않는다. 차분하게, 작가답게, 아이의 눈높이에서 타일러준다. 배고프다 먹는 저녁이 시원찮아도 나는 점잖다. 글쓰는 작가가 밥먹는 귀신이 되면 되겠나. 야식을 탐하는 습관도 순식간에 없어졌다. 일기도 책도 다 귀찮았던 나. 넷플릭스 귀신이 되어 밤이 되면 그 세상 속을 헤매다녔다. 그런데 작가가 그래서야 쓰나. 밤이면 작은 노트북 앞에 앉아 글쓰는 세상을 헤매다닌다.
이제 책도 읽고 싶어진다. 영화도 음악도 여행도. 모든 경험이 빈곤한 나. 이렇게 상식도 지식도 경험도 없어서야 어떻게 글을 쓰겠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별개로 살았다. 가끔은 나의 무식함과 무지함에 나도, 우리 가족도 놀라기도 했으나 내가 추구하던 삶 속에선 크게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욕심이 난다.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보며 지적으로 얻을 것 없는 내 이야기의 빈곤함을 느낀다. 책꽂이에 꽂아둔 읽지 않은 책들. 아, 언제 책을 읽고, 글은 언제 쓰나. 마음은 조급하고 욕심은 끝이 없다.
하루살이처럼 살고 싶었다. 영화도 노래도 여행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늘 하루도 마음이 잔잔하기만을, 별 일 없이 그냥 하루가 지나기만을 바라는 시간들이 너무 길었나보다. 그러나 지금. 4만명의 뒷배를 가진 듯 마음만 작가인 나는 빈곤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나는 또 욕심도 많다. 고유진씨가 내 글을 읽고 노랫말을 부탁하는 날.
조만간 가랑이가 찢어질 듯.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