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쓰는 일기 2026. 3. 18.~3. 21.
좋아하는 봄이 왔다. 그러나 봄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피어난다. 올해의 봄은 나에게 오지 않을 것 같다.
지난 수요일,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행사를 마쳤다. 4년째 하던 일이라 일이 어려울 것은 없다. 하지만 첫해 낯선 업무로 마주했던 그때보다 올해는 무언가 엇박자가 나고 자꾸만 일이 꼬였다. 내가 감당할 일이 아닌데도 나는 사과해야 했다. 늘 말속에 가시를 숨기며 나를 대하던 한 선생님은 또 다른 일로 나를 자극했다. 행사가 있기 전 우리 반 아이 하나는 나와 실랑이 끝에 "선생님은 지옥에나 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였다. 그렇게 그렇게 겨우 꼬여만 가던 행사를 마쳤다.
멍 때리며 나의 마음을 다독일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일을 꼬이게 만들었던 한 선생님은 굳이 술 한잔을 사주겠다며 나를 불러냈다. 정말로 나는 원하지 않았으나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조촐한 회식 자리를 갖게 되었다. 고생했다며 미안했다며 술을 권하고 나는 술을 마셨다. 과거 우리 학교의 교감이었던 그분의 호의와 진심 담긴 사과에 뭐 어쩌겠는가. 그저 또 그분의 마음을 받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술자리를 가졌다.
숙소로 돌아가던 길, 봄비가 오고 날은 쌀쌀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길을 걸었다. 무언가 발에 채여서 넘어졌는데 술을 마신 나는 중심을 잡지 못했다. 아니 중심을 잡을 겨를도 없었다. 사고는 이렇게 오는 것이다. 나이 50 된 여자가 술에 취해 바닥에 널브러진 장면으로 그렇게 사고는 다가왔다. 어디선가 피가 났다. 안경은 부러졌다. 코피가 났을까. 게다가 그날따라 나는 낯선 숙소를 찾아 길을 걸어야만 했다. 건물도 나무도 길도 낯설고 흐릿하다. 길을 찾기가 어렵다. 그리고 어디서 나는지 모를 피가 계속 나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일상이 깨졌다.
계단 모서리, 거친 아스팔트에 연한 얼굴이 찢어졌다.
얼굴의 절반이 온전치 못하다.
엄마를 어떻게 만나야 할까. 상처보다도 그게 더 무서웠다. 난 엄마에게는 아직 돌보아야 할 딸이다. 나의 행보를 틈틈이 잘 알리던 딸이 연락이 없다. 회식에 가고 싶지 않다고 엄마에게 하소연하며 갔던 딸이다. 엄마는 계속 전화를 했지만 나는 받지 못했다. 이틀을 혼자 병원에 다니면서도 내내 이 얼굴을 엄마에게 어떻게 보여야 할지가 막막했다.
이 봄이 지나면서 상처도 흐려지겠지. 그러나 "선생님은 지옥에나 갔으면 좋겠어요!"라는 여덟 살 아이의 말이 지금도 마음에 남는다. 다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위안하면서도 무언가 나의 일상을 깨어버린 것들을 되짚고 원망하는 마음이 가닥가닥 일어난다. 어제저녁, 내 얼굴을 보고 온몸이 덜덜 떨리는 우리 엄마의 모습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나의 일상을 깨기 위해 무언가가 조각조각 움직이고 있었을까.
그들이 다들 자신의 일들을 다 잘 처리하여 행사 준비 과정이 순조로웠으면 술자리가 없었을 텐데.
아니, 오늘은 너무 힘든 하루였으니 다음에 자리를 갖자고 내가 끝내 미루었으면 괜찮았을까.
처음 가는 낯선 길이 아니었으면 무언가에 걸리지 않았을 테지.
작은 일에도 늘 분노에 찬 여덟 살 아이를 만나서 그런 무서운 말을 안 들었다면?
"그래, 행복이 별거냐"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소소하게 펼쳐지는 잔잔한 일상의 행복을 안다고 자랑하는 글이었던가. 아니, 어쩌면 아무 일 없는 일상의 의미를 잊고 사는 내가 두려워 겨우내 보송보송한 털 속에 숨어있는 목련꽃을 붙잡고 싶었던 글이었던가.
저녁노을이 질 무렵, 늘 익숙하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는 우리 동네 길을 잠시 걸었다. 우리나라의 봄 냄새는 미세먼지의 냄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하곤 했었다. 미세먼지 냄새든 뭐든 간에 저녁노을 지는 이 아름다운 시간에 봄냄새를 찾아 평온했던 일상으로 되돌아오려고 조금 걸었다. 깨진 일상이 다시 찾아질까 봄밤에 기대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