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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라고 말해 주세요."

아이의 진심어린 부탁의 말, 나를 멈추게 해준 말.

by 봄비

너무나 예쁜 남자 아이가 있다. 자신의 잘생김을 스스로도 알고 있는 아이. 자기가 깔끔하게 생겼다고 말하는 1학년 우리반 아이. 이 아이의 말은 유난히도 순수하다. 1화에서 언급했던, 너는 꽃보다 더 예뻐라고 말한 그 연애 선수, 그 소년이 이 아이다.


그런데 단 하나. ADHD가 아닐까 하는 생각.


아이의 주변은 항상 무언가가 떨어져 있다. 내 물건 정리하는 법을 배우는 1학년. 아이의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없다. 아이의 뒤죽박죽 서랍에선 물건을 찾을 수 없다. 아이고, ○○이 서랍이 곧 토할 것 같아. 정리가 필요하다는 말을 돌려서 한다. 아이의 손에는 항상 또 무언가가 쥐어져 있다. 손에 들고 있는 무언가를 항상 흔든다. 또는 그 물건으로 책상을 두들기기도 한다. 그러다 그걸 놓치면 또 주우러 다니기 바쁜 아이. 항상 오른쪽 실내화는 저기 어딘가에 벗어두고 다리를 떤다. 어디서 발꼬락내가 난다 했더니... ○○이 발꼬락 냄새인가 봐. 아이들이 웃는다. 재미있게 말하며 고쳐보길 유도한다. 아이는 우리가 의자에 앉듯이 의자에 앉지 않는다. 의자에는 무릎을 꿇고 앉아야 한다고 배운 아이처럼. 때론 엉덩이 받침과 허리 받침 사이의 공간에 다리를 넣고 서 있기도. 어느날은 그 자세로 뒤로 넘어지기도. 운이 좋았다. 그 상태로 잘못 넘어졌으면 무릎이 반대로 꺾여버렸을지도 모를 일. 무서웠다. 비오는 날을 좋아하는 아이. 우산이 무기기 되는 날. 쉬는 시간에도 우산을 휘두른다. 정말 걱정되고 무서운 나날이다.


유튜브에 노출된 시간이 많은 아이. 나로선 알 수 없는 외계어같은 주문을 수업 시간에도 끊임없이 외운다. 하도 하도 외워대서 검색을 해본다. 트랄라레로 트랄랄라. <AI가 생성한 기괴한 상어 캐릭터의 이름이자, 해당 캐릭터를 활용한 밈의 이름. 기괴한 이미지와 음성으로 구성된 짧은 영상>이라고 한다. 수업시간에 아이가 쉴 새 없이 주문을 외워대면 다른 아이들은 가만히 있을까. 킥킥거리며 웃는 아이, 자기가 본 유튜브 영상 이야기로 이어가는 아이, 같이 주문을 외우는 아이. 1학년 아이들이, 1학년 교실이 다 그렇지. 아니,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는 행동을 해선 안되는 거라고 배워야 할 결정적인 시점이다. 작은 사회로 첫발을 내딛은 아이들. 절대로, 그 부분은 물러설 수 없는 양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마지노선.


이대론 수업이 어렵다. 이대론 안전한 교실이 될 수 없다. 아이의 어머니와 상담을 한다. 세월이 세월인지라 참 어렵다. 아이의 누나도 내가 가르쳤기에 나름 어머니와 나 사이엔 신뢰가 있었다. 조심스러운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의 어머니는 표정이 굳어진다.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와 인연이 되어 만난 이 아이를 못본척 할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어머니가 듣기 좋은 이야기로만 상담을 이어갈 수도 있다고. 아이가 똑똑하다는 이야기로 상담을 마칠 수도 있었다고. 하지만 그건 내가 아이를 못 본 척 하는거라고 말하는 나. 어른으로서, 게다가 교사로서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가 어떤 사회에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사랑받고 인정받으며 자라길 바란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아이가 될까봐, 밉상받는 아이가 될까봐 걱정하는 나의 진심. 하지만 나의 진심과 아이 어머니의 생각은 달랐다. 교실에 CCTV가 있다고, 그래서 엄마가 다 보고 있다고 말하면 아이가 달라질거라고 말하는 아이의 어머니.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이는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을 때 마음이 움직이는 영리한 아이에요. 아이의 어려움을 알아채고 어른들이 도와줘야 한다고 말한다. 전문가를 통한 검사와 치료를 권했다. 하지만 가정에서의 협조를 기대할 수 없었다.


나 혼자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위험해 보이는 순간, 나는 아이의 이름을 다급하게 부른다. 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이야기를 수업 시간에 중얼거리고 있을 때, 또 나는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아이의 이름을 불러댄다. 항상 나직하고 상냥했을까, 내 목소리는.


아이들에게 자동차 이야기를 들려준다. 브레이크가 왜 필요한지.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이 아이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 위급한 상황. 나는 ○○아, 브레이크. 브레이크가 필요해.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나날이 전쟁. 나도 지쳐갔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아이를 불러대고 있는 나. 상냥한 선생님이 되어주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의 상황은 최고조를 달렸고, 나의 인내심은 바닥을 친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를 내질렀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복식호흡을 했던가. 엄청난 성량을 자랑했다,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자기가 외울 주문, 자기가 흥얼거릴 노래는 다 끝내야 멈췄던 아이, 울지 않던 아이, 말간 눈으로 나를 바라만 봤던 아이. 그 아이가 울었다. 내 화난 얼굴은, 내 목소리는 어땠을까. 나는 책상에 엎드렸다. 1학년 담임을 15년째 하는 나. 경험이 없는 내가 아니다. 이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내가 아니다. 내가 책상에 엎드렸다. 공포분위기. 다른 아이들도 숨죽인다.


결국은 어른이 지는 법. 정신을, 마음을 다시 붙잡아 온다.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아이에게 데이트를 하자고 한다. 선생님이랑 둘이 산책가자고. 순수한 아이, 자연을 사랑하는 아이니까. 선생님이랑 둘이 바람쐬며 산책하자고. 아이의 손을 잡고 걸었다. 아이들 앞에서 바닥을 드러내보인 내가 부끄러워하며.


선생님이 맨날 ○○이 이름 부르고, 맨날 하지 말라고 해서 억울했어? 물었다.

아이는 아니라고, 억울하지 않다고, 자기도 그렇게 하면 안되는 걸 안다고 말한다.

선생님이 맨날 브레이크! 외쳐서 힘들었어? 물었다.

아이는 내 손을 꼬옥 잡으며,

자기 말을 똑바로 알아들으라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까딱까닥 하며

한마디 한마디 힘주어 말한다.

선생님, 선생님이. 브레이크라고 말해도. 제가 안들을 때는. 더 크게. 브레이크라고. 말해주세요.


1학년, 이제 겨우 8살 아이다. 아이는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잘 멈춰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니 선생님이 더 크게 말해달라고 말하는 아이. 아... 나는 멍하니 앞을 바라보며 탄식한다. 그런 아이에게 나는 바닥을 보여버렸다. 아이에게 말할 수 없이 미안했다.


선생님이 미안해,

노력하고 있는 줄 몰랐어.

선생님이랑 화해할래? 물으며 아이를 안아줬다.


이후 나는 착해졌다. 나는 착한 목소리로, 교과서에 나올 법한 선생님의 표정으로 ○○아, 브레이크, 브레이크가 필요해! 말한다. 그럼 이 착한 아이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아가며 행동을 멈추어준다. 얼음이 되어준다. 선생님과 얼음땡 놀이를 하듯이.


브레이크.

아이를 멈추게 하려고 내가 했던 말.

그 말이 나에게 돌아왔다.

변신괴물이 되어가던 나를 멈추게 한 것.

아이들 앞에서 바닥을 보이는 부끄러운 선생님이 되지 않도록 한 것.

폭주하는 나에게 브레이크를 건 말.

"선생님, 브레이크라고 더 크게 말해주세요. "

나는 다시 착해졌다.

나는 영원히 착해질거다.

이 말을 기억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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