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없는 명절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by 차진호

올해부터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버지는 22년 전에 60년도 못 살고 돌아가셨습니다.

큰집이고 장손이라서 명절에는 모든 가족이 우리 집으로 모였고, 어머니는 아버지 기제사와 명절 제사를 지내왔습니다. 나를 비롯하여 몇몇 가족들의 성화가 있었고 어머니의 결단으로 올해부터 모든 가족이 다 모여서 치르는 제사를 없애기로 한 것입니다.


식당은 일 년에 두 번 명절에만 문을 닫습니다.

식당은 늘 열어놓고 언제든지 사람이 들어와서 밥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문을 닫는 것은 장사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연휴에는 보통 손님이 많아서 직원 외에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합니다. 당연히 일당도 평소보다 더 많이 주어야 합니다.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할 명절에 힘들게 일하는 직원들의 불만과 미세하게 보이는 짜증은 보너스와 특식으로 잘 풀어주어야 합니다.

장사가 잘 돼서 좋기도 하지만 장손으로서 제사를 지내고 출근을 하기 때문에 명절에는 가족들에게도 미안하고 직원에게도 미안했습니다. 명절이 시작되기 몇 주 전부터 연휴가 끝나고 며칠간은 보통 매출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연휴기간에 떨어진 만큼 더 팔게 됩니다. 그러니 몸은 힘들게 일하고 매상은 올라도 전체 평균으로 보면 똑같은 결과입니다. 그런 저런 이유로 몇 년 전부터 설날과 추석에 명절 전날, 당일 이틀을 쉬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고부터는 명절이 좋지가 않았습니다. 불편하고 피곤한 날이었습니다.

가게 문을 닫기로 하고부터는 더욱 그랬습니다. 전날은 음식 준비 하는 어머니와 아내를 도우면서도 아이들을 온전히 돌봐야 했습니다. 명절 당일에는 일찍부터 제사상을 차리고 친척들을 맞이합니다. 아침을 먹고 담소를 나누고 재빠르게 정리하고 처갓집으로 향합니다. 인사를 드리고 점심을 먹고 하하 호호하다가 어두워지기 전에 집을 나섭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본가와 처가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TV에서 보는 교통체증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의 명절 스트레스를 받아 주어야 합니다. 집에 도착해서 양가 부모님께 받은 먹거리들을 잘 정리하고 나면 명절 휴무가 끝이 났습니다.

원하지 않는 노동, 여유 시간이 없는 남편, 무심코 던지는 친척들의 가식과 가시의 아슬아슬 한말들로 아내는 아내대로 힘든 시간이고 나는 나대로 반복되는 연례행사에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라고 인사를 전하지만 명절이란 게 즐거웠던 적은 시골 외갓집에서 보낸 초등학생 때 밖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갈비와 같은 맛있는 음식을 쉴 틈 없이 먹을 수 있고 친척 형, 누나들과 밖에서 재밌는 놀이도 하고 무엇보다 주머니 두둑하게 세뱃돈도 받으니 집에 가는 것도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 특히 어머님들의 희생이 어린 시절 명절 즐거움의 밑바탕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하고 맞이한 첫 명절이었습니다. 이틀간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제사상을 차리지 않았고 아버지를 모셔둔 납골당에 가서 인사를 올렸습니다. 제사를 집에서 지내지 않는다는 것만 빼고 비슷한 패턴으로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왠지 모를 여유와 편안함이 있었습니다. 다음 추석에는 온 가족 여행을 계획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친척들을 만나지 못해 세뱃돈이 줄었다며 아쉬워하는 아이들만 빼고는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한 것은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즐거운 명절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연휴는 끝나지 않았지만 내일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연휴의 마지막 날은 외식을 많이 합니다. 관광지나 대형 카페등에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우리 가게도 손님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지금까지는 그래왔습니다. 매년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입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무거운 일들이 어떤 계기로 또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변화되고 해결됩니다.

희생을 감내하고 간절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 인생은 완만한 우상향일 것입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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