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은 계란이었다.

아빠의 육아

by Ralgo

이 작은 막대기에 의존해 임신을 확인한 지 몇 주가 지났다. 대략 7주쯤 지난 어느 날, 우리는 산부인과로 향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막대기 같은 이 작은 임신테스터기로 확신을 얻을 순 없었다. 적어도 마법사, 아니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어야 정확하지 않을까.


집 근처의 산부인과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른 남자들에겐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산부인과란 금남의 영역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남자들은 출입 금지, 여기부터는 여성만 들어올 수 있음'이라고 쓰여있는 팻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리고 들어선 산부인과에는 내 예상과 달리 많은 남자들도 같이 앉아있었다.


예비 부모가 될 사람들이 이리 많이 오는 건가, 하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기 무섭게 알코올 손세정제로 손을 비비며 접수를 진행했다.(2021년 코로나 진행 시기였다) 난 많은 부모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처럼 뻘쭘하게 자리에 앉았다. 난 아직 내가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다.


와이프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난 딸이면 좋겠어, 아들은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어."


"난 아무 상관없는데..."


"아들이라고 그러면 울 것 같아"


"오늘은 모를걸...?"


시답잖은 얘기를 하다 간호사의 말에 진료실로 들어섰다. 의사 선생님은 몇 가지를 물으시더니 와이프의 배에 바코드 리더기를 문질렀다.(아무리 생각해도 바코드 리더기와 비슷하게 생겼다.)


"아주 좋네요. 임신 축하드려요"

우리의 첫 만남은 계란이었다.


의사 선생님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사람들이 울기도 하고 그런다는데... 내 감상은 그저 "오 계란~"정도였다. 아직 저 작은 녀석이 사람이 된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기도 했다. 사람으로서 그 어떤 형태도 띄지 않는 계란을 보면서 무슨 반응을 해야 할까.


"자기 배에 사람이 될 계란이 들어있대"


"아직 모르겠어"


초음파 사진을 보면서 떠올린 생각이 있었다. '무사히 잘 태어나서 보자'. 초음파 사진을 들고 진료실을 나오고 나서야, 나는 조금 아빠가 된다는 현실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 앞으로 저 계란이 사람이 되고 언젠가 셋이서 같이 놀 때가 오겠구나 싶었다. 아직 철없던 어른이 조금은 어른이 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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